(토마토칼럼)'중대재해 기업 대출 제한' 운용의 묘 살려야
2025-08-05 06:00:00 2025-08-05 06:00:00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출과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에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 안전은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다만 과도한 책임 범위와 금융 페널티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단 점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금융 페널티'의 논의가 시작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중대한 사고가 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했다. 
 
대통령의 지시를 제도로 안착시키는 과정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금융을 징벌적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중대재해 자체가 금융 제재의 기준이 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금융기관의 대출 판단 권한이나 위험 평가 기준은 자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법적 사안인 중대재해 문제를 대출 심사와 연동할 경우 금융사의 업무는 본연의 역할인 채무 상환 능력 평가가 아닌, 사회적 문제를 판단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또한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중소·중견 기업은 자금 문제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금융 페널티라는 제재를 가할 경우, 사고 발행 이후 안전 투자 여력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높은 수위의 처벌이 도리어 노동자 안전이라는 예방적 효과를 약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잉 규제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아직까지도 적용 범위나 법률 해석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기업인들 입장에서는 경영활동에서 '예측 가능성'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고를 기준으로 대출 페널티를 적용할지, 사고 횟수나 경중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 발생만으로 일률적인 대출 제한 지침이 생긴다면, 은행 여신 심사가 경직화할 가능성도 크다.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을 강화하고, 인명 피해를 예방하는 데 인센티브를 주는 기조는 장려해야 한다. 동시에 중대재해 발생 기업을 엄중히 처벌하고, 노동자 안전이 기업의 책임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도 꼭 필요한 요소다. 
 
다만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금융 페널티 도입은 금융 본연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금융의 정책적 개입 논란이나 기업의 경쟁력 저하 등 연쇄 부작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정교한 정책적 설계 없이 내놓은 대출 차단 방식은 도리어 기업활동의 위축과 정책 불신을 가져와 국민적 손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시장 규제의 최종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개선이어야 한다. 금융 페널티라는 징계보다는 기업 문화 개선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산업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유도할 수 있는 '운용의 묘'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임유진 금융팀장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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