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정치적 갈등 심할 때마다 치솟은 자살률
2009년, 2018년, 2023년 갈등과 자살률의 상관관계 보여줘
상대방 악마화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
2025-04-10 08:59:21 2025-04-10 14:38:58
자살 사망자 수 전년 대비 증감률(%). (그래픽=생명존중시민회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우리 사회는 자살률이 OECD 1위, 전 세계 4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자살 통계를 살펴보면, 몇몇 해에는 전년 대비 자살자 수가 유독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주목할 만한 해는 2009년(+19.9%), 2018년(+9.7%), 그리고 2023년(+8.5%)입니다. 이 세 시점의 공통점은 모두 심각한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이 표면화된 해라는 점입니다. 과연 정치적 갈등과 국민의 자살률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현직 대통령이 출신 정당과 무관하게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갖던 아름다운 전통은 지난 2004년 1월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양극단으로 치달아온 한국 정치의 비극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9년: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치솟은 자살률
 
2009년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발생한 해입니다.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중 생을 마감하면서 국민적 충격과 비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자살자 수는 1만5412명으로, 전년도보다 무려 19.9%나 증가했습니다. 이런 최악의 수치는 전무후무한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정치 보복 논란, 언론의 과도한 보도 경쟁, 검찰 권력의 과잉 문제를 떠올리게 했고, 국민들은 큰 정신적 피로감과 상실감을 겪었습니다.
 
그 이전인 2008년부터 근거조차 불분명했던 광우병 시위와 뒤를 이은 ‘건국 60주년’ 논란에 따른 정부와 야당의 광복절 행사 별도 개최를 거치면서 정치적 갈등이 본격화되었고, 양극단으로 파국을 향해 치달은 것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0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의 죽음 이후 3개월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 환자 수가 평균보다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 ‘적폐청산’과 갈등 프레임의 확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 이후, ‘적폐청산’을 국정 과제 1호로 채택했습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적폐청산’은 사법 정의와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18년 들어 대대적인 수사가 이어지고, 과거 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사회 전반은 극단적 진영 대결의 분위기로 빠져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가 만들어지고 예산을 늘리는 등의 노력과 전혀 무관하게 2018년 자살자 수는 1만3670명으로 전년도(1만2463명)보다 9.7% 증가했습니다. 이는 지난 사상 두 번째로 큰 증가입니다. 이 시기에는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었고, 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이어지며 대중의 심리적 충격이 컸습니다.
 
사회 전반은 ‘선’과 ‘악’으로 나뉜 듯한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혔고, 정치적 반대 세력은 '적폐'로 규정되며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극도로 좁아졌습니다. 국민들 사이의 이념적 피로감과 분열은 일상까지 스며들었고, 정신적 안정감은 점점 무너졌습니다.
 
2023년: 상대방 악마화, 번아웃된 사회
 
정권 교체 후 이어진 정치적 공방은 상시화되었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대립, ‘조국’ 임명을 둘러싼 갈등, 야당 대표 수사, 국회 마비 등의 사태가 계속됐습니다. 언론과 SNS는 매일 대립과 혐오의 언어로 넘쳐났으며, 국민들은 지쳐갔습니다. 언론인과 원로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에게 야당 지도자를 만나라고 권고했지만 무시되었습니다. 경제적 불안정, 부동산 문제, 청년 실업 등 삶의 문제와 정치적 무질서가 겹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상실한 계층이 늘어났고, 야당은 줄 탄핵이라는 무자비한 공세로 맞섰습니다. 정치권은 극심한 대립 상태를 반복하며 다양한 사건이 정치 일정을 뒤흔들었고, 2023년 자살자 수는 1만3978명으로 2022년보다 8.5% 증가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SNS를 중심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트럼프가 사용한 전략으로 유명한 “내 편 아니면 적(If you’re not with us, you’re against us)”이라는 논리에 휘둘렸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정치적 악마화(political demonization)’라고 분석합니다. 이는 상대 정치세력을 합법적 경쟁자가 아닌, 적(敵)으로 규정하고, 소통과 타협 대신 배제와 응징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니퍼 메르시에카(Jennifer Mercieca)는 『대통령을 위한 선동가(Demagogue for President)』에서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도덕적으로 타락한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기능을 상실한다”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이를 “적대적 정치 담론이 공적 신뢰를 파괴하고, 시민을 정치적 병영에 가두는 효과”라고 지적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최근 이 담론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같은 정치문화 속에서 국민들은 끊임없는 갈등과 혐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적 소진(burnout) 상태로 내몰리게 됩니다.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은 『리퍼블릭닷컴 2.0(Republic.com 2.0)』에서 정치적 분열이 심할수록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피로가 증가하며, 정치적 양극화가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확대될 경우 극단적인 행동과 불안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23년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정치 피로 사회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정치가 국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 <정신건강과 정치적 불안정(Mental health and political instability, 2010)>에 따르면 정치적 혼란과 갈등은 집단적 불안과 우울증 유병률을 높이고, 자살률 증가와 강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공정규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은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특정 이념이나 정치 집단과 동일시하며, 반대 집단을 ‘적대적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는 사회적 유대감을 약화시키고 공동체 내 신뢰를 저하시킨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 협력이 어려워지고, 공공 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 갈등 자체만 중심이 된다. 사회적 신뢰가 낮아지고 연대감이 약화되면 개인의 정신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서적 부담을 더욱 가중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단순히 정치 갈등이 존재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한국 정치문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전달되느냐는 점입니다. 타협과 절제보다는 증오와 배제가 앞서는 정치 담론은 국민 개개인의 심리적 안정을 파괴합니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치적 갈등 수준을 낮추고,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회복하는 데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20년 동안 OECD 국가들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고수해 온 높은 자살률은 우리 정치권에 묵직한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소진하고 황폐화하는 방식의 정치로 자기네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고, 그로 인해 자살률이 치솟는 이 끔찍한 곡선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인들의 태도, 언어, 책임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적대시하는 일부터 사라져야 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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