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1. 색다른 저녁 식사
2012년 라오스에 왔다. 학원에서 60시간 동안 라오어를 배워 가게 간판 정도는 읽게 됐다. 라오어 학원 입문반을 마치고 회화 능력이 여전히 형편없어 개인 교습을 받았다. 라오어 개인 교사 조건은 이랬다. 수도권 출신, 대학 졸업자, 영어 사용자, 여성. 내건 조건이 까다로웠는지 쉽사리 구해지지는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적합한 선생님을 만났다. 당시 26살 여성으로 라오스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이름은 ‘미나’라고 하자. 3월에 태어났다고 삼월이라 부르던 아명이 굳어져 그녀 별명이 됐다. 라오인은 일상생활에서 별명을 쓰지 본명을 쓰진 않는다. 라오어 수업 시간이긴 했으나 사실상 언어 교환의 장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영어 회화 연습 상대가 돼줬고, 그녀는 내게 라오어 표현 능력을 길러줬다. 둘 다에게 생산적인 만남이어서 햇수로 2년간 서로 사제 관계를 맺었다.
제한적이나마 그녀를 통해 라오인 사고방식에 접근하게 됐고, 그녀의 가족과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에겐 ‘메싸’란 연년생 여동생이 있었다. 메싸도 같은 국립대학을 나와 다른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미나는 외할머니, 메싸는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가 연년생 자매를 기르기가 어려워 미나는 외할머니에게 보냈다. 둘 사이는 자매지만 친척과 비슷한 처지가 됐다.
난 메싸를 불러 저녁을 제안했고, 미나도 동석했다. 저녁 식사 약속 전날 미나에게 메싸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동석해도 되냐는 허락을 구했다. 장소는 바다가 없는 라오스 특성을 살려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뷔페로 정했다. 약속 장소에 나, 미나 그리고 메싸가 먼저 와 자리를 잡았고, 남자 친구는 늦게 합류했다.
남자 친구? 근데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커플과의 식사에 말머리를 쉽게 찾지 못했다. 미나는 내게 어떤 귀띔도 해주지 않았었다. 잰 체하길 좋아하던 내가 어눌하게 구니 재미가 있었는지 또는 통쾌한지 흘끔흘끔 미나는 날 곁눈질하면서 웃음기를 거두지 않았다. 세 사람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도 할 수 없는 자리를 겨우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미나와의 다음 수업 시간에 메싸가 데려온 파트너는 '톰'이라는 친구고, 그녀는 여성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톰? 난 미나의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톰은 톰보이의 약칭이란 걸 알게 됐다. 톰보이는 남녀 구별 없이 입는 의류 브랜드 이름인데 레즈비언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라오스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은 긴 머리를 한다. 미혼 여성이 머리가 짧은 건 엄청난 일탈로 여긴다. 여성이 남성복 차림을 하고 단발을 하면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레즈비언이라는 무언의 커밍아웃이 된단다.
라오인의 집 문이나 마당에 세워지는 지신당 '파품' 사진=제국몽
2. 홀어머니의 초대
미나의 어머니가 내가 궁금했는지 집으로 초대했다. 명분은 자신의 두 딸에게 밥을 사준 것에 대한 답례였다. 어머니는 두 딸이 어렸을 때 남편과 헤어졌다. 남편은 집을 나가 세 번째 부인을 만나 살고 있다. 어머니 초혼이었고 남편이 두 딸을 두고 나갔으니 오롯이 생계를 책임졌다. 어머니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있었는지, 돈 버는 것에 소질이 있었는지 고급 주택은 아니었지만 셋방이 몇 칸은 되는 큰 집에 살고 있었다.
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중산층 가정 식단을 훔쳐볼 요량으로 미나에게 절대 특별한 음식은 차리지 않도록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커다란 나무에 통판을 올린 식탁에서 미나와 앉았다. 메싸와 파트너는 늦게 왔는데, 일행을 달고 나타났다. 손님은 아니고 셋방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난 분위기를 통해 그들 모두가 레즈비언 커플이란 걸 알게 됐다.
경험이 최고의 선생이라고, 말문이 막히는 일 없이 적응을 해나갔다. 엄마는 레즈비언 딸을 이해했고, 딸이 속한 작은 커뮤니티의 보호자였다.
3. 집주인
라오스는 유행병 기간에 완전한 셧다운이 있었다. 난 내핍의 시기를 맞아 재래시장으로 유명한 복사골이란 변두리 마을로 이사를 갔다. 라오스는 전세가 없고 방세를 미리 지불하는 사글세 개념만 존재한다. 목돈이긴 하지만 한꺼번에 내면 깎아주는 게 관례라 손해보는 거래만은 아니다.
집주인 커플이 레즈비언이었다. 집주인 ‘톰’이 남자 이미지라 얼핏 보면 이성 커플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오래 비워둔 집이라 손볼 곳이 많았다. 톰은 직업 목수라 해도 믿을 만큼 일을 잘했다. 문과 창문의 어긋난 곳을 손봐주고, 침침한 화장실도 고쳐줬다.
라오인 마당에는 지신을 모시는 작은 탑 모양의 구조물 ‘파품’이 있다. 난 톰에게 사진을 찍는 의도를 설명하고 파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구했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선하게 포즈를 취해줬다.
내가 세를 살던 집의 집주인. 남성처럼 보이지만 레즈비언 여성이다. 사진=제국몽.
4. 한국인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시각
한국인에게 태국은 관광 대국이면서 트랜스젠더가 많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해 라오스 수도 위양짠의 여행자 거리, 세타티랏 도로의 밤은 레이디보이가 지배한다. 라오스는 태국보다 경제적 수준이 떨어져 트랜스젠더는 보기 어렵고 잘해야 호르몬제에 의존한 여장 남성 즉 레이디보이가 많다.
태국 사회에 트랜스젠더가 많은 이유에 이런저런 분석이 많다. 난 관찰자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더러 끄덕이지만 시각이 좁단 느낌을 받는다. 태국과 라오스에 트렌스젠더만 많은 게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들이 많은데 왜 트랜스젠더에만 집착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됐다.
5. 태국의 결혼평등법
지난 1월 태국에서 결혼평등법이 시행됐다. 이 법에 의해 태국인은 18세 이상이면 성별에 관계없이 결혼과 이혼을 할 수 있고, 동성 간 결혼도 이성 간 결혼과 마찬가지 권리를 갖게 됐다. 이 법안으로 ‘남편과 아내’란 용어 대신 ‘배우자’라는 성 중립적 용어로 바뀌어 모든 개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태국 헌법 원칙을 따르게 됐다고 평가를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보다 여성이 이 법안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다.
태국 제2당 소속 패통탄 친나왓, 웅잉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이 여성 총리는 결혼평등법 시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은 같지만 꿈이 아니다. 모두에게 축하를 전한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고,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태국과 라오스는 LGBT, 즉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트랜스젠더에 대해 포용적 사회다. 그렇다면 한국은?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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