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1. 오해
어느 사회나 인간의 짝짓기가 개인적인 행사가 된 것은 근대적인 현상이다. 전통 사회에선 최소한 집안의 일이었다. ‘시집’을 가고 ‘장가’를 든다는 표현이 남아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라오인은 장가를 들지, 시집을 가지 않는다.
따이인에 속하는 좡족의 혼인 풍속을 중국의 백과사전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여자가 남자를 맞이하고, 남편은 아내를 따라 산다.” 하지만 좡족은 현재 시집을 와서 남편을 따라 사는 부계사회 위주로 변화되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선남이 라오의 선녀와 결혼하기 위해 예비 처가를 방문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오인끼리의 혼사라면 신랑이 될 사람에게 출가 경험을 묻는다.
상좌부 불교권에서 신랑의 첫 번째 자격은 출가 경험이다. 라오 남성은 직계 어른의 장례를 마치면 출가를 많이 한다. 상을 당하면 남자 직계 후손들이 머리를 밀고 가사를 입는데, 마침 기회가 온 김에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절에 들어가는 것이다. 장모와 장인의 입장에서 예비 사위의 출가 경험은 효도를 할 싹수가 있다는 일종의 신용 보증서와 같다. 외국인 예비 신랑에게는 그런 것을 묻기 어려우니, 두 사람의 의지만 확인되면 바로 혼수 문제로 넘어간다. 라오스에서 혼수는 ‘카동’이라 불린다. △카(Kha): 값, 가격 △동(Dong): 결혼식. 즉, 결혼식 비용이란 뜻이다.
태국에선 이를 ‘씬쏫’(Sin Sod)이라고 하며, 예비 장모는 딸을 키운 젖값이라고 설명하지만, 본래 뜻은 신부 측에 제공하는 재물이다. 한자로 표현하면 정확히 ‘납폐’(納幣)에 해당한다.
혼수란 1차적으로 노동력에 대한 보상이다. 지참금으로 주건, 패물로 주건,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게 지급해야 한다.
근대인들은 종종 여권과 모권을 혼동한다. 라오스의 전통적인 농촌사회를 보면, 엄마들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는다. 민물 젓갈용 고기를 잡는 것도 여성의 일이다. 미혼이라도 어머니가 될 준비를 하는 셈이다. 남편은 집을 고치거나 논밭을 갈거나, 짐승이 들어가지 못하게 목책을 두르는 식의 계절성 육체노동을 한다. 일상적으로는 할 일이 없으니 술을 마시거나 놀 궁리를 하며, 잘해야 아이를 봐주는 정도다.
한국인들은 라오 부모가 외국인 예비 신랑에게 지참금을 요구하는 걸 외국인이라서 그런 줄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라오 남성에게도 당연한 의무다. 외국인 예비 신랑에게 요구가 더 많아지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딸의 배우자는 데릴사위로 들어가 처가를 위해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반대로 귀한 노동력을 데려가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라오인과 같은 따이 문명권이나 모계 전통이 있었던 사회의 딸들은 시댁에 와서 며느리가 되었더라도 시가가 아니라 자기 집안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성용 투망인 ‘까둥’을 들어올리는 라오 여성. 라오스는 민물 젓갈을 담는 문화가 있다. 사진=오광석 작가
2. 막내딸 상속
라오스 국립대학교 외국인 입학생을 위한 예비 과정 교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라오스의 상속은 막내딸에게 한다.” 교수는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달라졌지만요.”
라오스에서 세를 얻으러 가면, 안주인이 파란 인주와 계약서를 준비하고 손도장을 찍는 경우가 많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찬물만 내오는 일이 흔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부동산은 대부분 상속받은 안주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라오스에서는 딸을 낳으면 매우 기뻐하고, 아들을 낳으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더라도 덜 좋아한다. 딸을 낳으면 언젠가 믿음직한 사위를 데려올 거라는 기대가 있고, 함께 살 자식은 보통 딸이다. 딸들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함께할 가능성이 높은 자식이 막내딸이기 때문에 상속자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3. 소박 맞는 라오 남편들
라오스에선 남편이 소박을 맞는 경우, 특히 외소박이 많다. 라오 남편은 사면초가가 아니라 '사면처가'로 사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살면서 불평이나 투정이 없을 순 없는데, 아내의 불만에 장인, 장모, 처형, 처제, 처남까지 한목소리로 동조하면, 결국 쫓겨나는 것이다.
라오 남편은 고군분투하다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 집을 나가게 된다. 홧김에 가정폭력까지 벌이면 모든 걸 잃게 된다. 애초에 집이 자기 소유도 아니었으니, 잘해야 오토바이 한 대 정도만 챙길 수 있다.
친권이 아버지에게 넘어가는 일은 드물다. 대학 진학률이 낮기 때문에 라오 여성은 조혼으로 인해 10대 워킹맘이 많은 편이다. 어린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밖에 나가고, 아이는 외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라오인은 ‘돈을 번다’는 표현보다 ‘돈을 찾는다’고 한다. 씨가 다른 형제자매는 많지만 배가 다른 형제자매는 드물다. 어머니 중심의 가족 구조에서는 씨가 다르다고 차별하거나 불화를 겪는 일도 드물다.
장례에 참가한 가족들. 망자의 직계손들은 가사를 입고 삭발을 해야 한다. 사진=우희철 작가
4. 태국 한인 사회 모계 논쟁
현재 태국에서는 성(姓)을 아버지를 따르기 때문에, 혈통상으로는 분명히 부계사회다. 하지만 인류학적 관점에서 ‘리니지’(lineage, 친족으로 느끼는 범위)를 보면, 모계 쪽 인간관계가 부계보다 훨씬 밀접하다.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 등과의 관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태국의 지배 엘리트는 왕실, 군부, 중국계 이민자 사회인 객가의 연합체로 평가된다. 사회·정치적 권력은 남성 중심이지만, 일상에서 가정 내 권리와 재산의 처분권은 오히려 남편보다 아내에게 유리하다. 이런 모계와 모권 영향력은 농촌으로 갈수록 강해지고 도시로 갈수록 약해진다.
태국의 근대화 시기는 한국보다 빠르고, 저출산 문제도 심각하며, 중위 연령도 한국과 비슷하다. 방콕과 같은 대도시에서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은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따이 문명의 전통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5. 따이 문명 속 따이 여성
*아농(A Nong)
따이 여성 중에는 정치 및 군사 지도자가 많았다. 북송 시기, 따이계 농족 여성인 아농은 중국과 베트남 정권에 맞서 대력국→남천국→대남국으로 이어지는 국가 건설 최고 지도자로 활약했다. 아농의 군대에는 여성 장군이 많았으며, 양매와 농지영은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끈 실전 지휘관이었다.
중국 백과사전에도 양매는 명장으로, 농지영은 뛰어난 전공을 세운 인물로 기록돼 있다. 참고로 농지영은 아농의 손녀다.
*란나
오늘날 태국 치앙마이에 세워진 타이인의 첫 국가, 란나 왕국. 중국 기록에는 란나를 ‘800명의 며느리가 있는 국가’로 표현했다. 13세기경 중국인 관찰에 따르면, 란나 왕국은 800개의 크고 작은 혈연 및 지역 공동체 국가인 ‘므앙(Meuang / Muang)’으로 구성돼 있었다.
므앙의 지도자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최고 권력자인 남성 왕은 혈연으로 연결된 여성 지도자들이 둘러싼 만달라 체제의 중심이었다.
이 두 사례만 봐도, 따이 문명은 모계와 모권 사회에서 출발하여 근대화와 중앙집권화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온 사회라는 걸 알 수 있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