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만 '유산세→유산취득세' 전환…물려받은 만큼만 세금 낸다
자녀당 5억, 배우자 법정상속분 무관 10억까지 공제
다자녀·재산 많을수록 세 부담 경감…'부자 감세' 비판도
2025-03-12 17:59:02 2025-03-12 17:59:35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지난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정부가 지난 1950년 상속세 도입 이후 75년 만에 낡은 과세 체계 손질에 나섰습니다. 전체 상속분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현재의 '유산세' 방식이 아닌 각 개인이 상속받은 재산에만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가령, 현재 상속재산 20억원을 배우자와 자녀 2명이 상속하면 1억3000만원의 상속세를 내던 것이 유산취득세로 바뀌면 한 푼도 내지 않게 됩니다. 또 자녀 공제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올리고 자녀가 많을수록 공제액이 늘어나도록 인적 공제도 확대했습니다. 다만 상속세 체계 개편으로 세 부담이 경감하면서 세수 감소는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이미 윤석열정부 들어 다수의 감세 정책으로 세입 기반이 취약해진 상태에서 상속세 개편까지 이뤄지면 세입 기반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부자 감세'라는 비판도 뒤따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배우자 공제범위 확대…다자녀일수록 유리
 
기획재정부는 12일 이 같은 내용의 '상속세 과세체계 합리화를 위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현행 유산세는 사망자가 남긴 유산 전체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합니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개별 상속인이 물려받은 재산 각각에만 세금을 부과합니다. 이 경우 'N 분의 1'로 기준 금액, 즉 과세표준이 낮아져 누진세율 체계에서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최고 50%까지 누진 과세되는 현행 상속세 과세 체계에서는 개별 상속인이 상속받은 유산에 비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정부는 인적공제도 전면 손질했습니다. 일괄공제를 없애고 자녀공제와 배우자공제를 대폭 확대한다는 게 이번 방안의 핵심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망자의 전체 재산에서 일괄공제(5억원) 및 배우자공제(최소 5억원, 법정상속분 이내 최대 30억원)을 빼고 남은 금액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매겼습니다. 정부는 이를 개선해 실제 상속받는 사람 각각에 대한 공제를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자녀 1인당 공제액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 조정합니다. 즉, 다자녀 가구일수록 공제 혜택이 커져 상속세 부담이 줄어듭니다. 직계존비속에는 5억원, 형제 등 기타 상속인에는 2억원을 각각 적용합니다.
 
배우자 공제도 강화합니다. 배우자의 경우 민법상 법정상속분 한도(30억원)에서 실제 상속분만큼 공제받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대 공제한도 30억원을 유지하되, 10억원까지는 법정상속분을 넘어서더라도 공제가 가능합니다. 법정상속분과 무관하게 10억원까지는 배우자 상속세가 아예 없도록 인센티브'를 추가한 것입니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배우자공제 폐지는 최대한도를 없애거나 법정상속분만 남기거나 둘 중 하나"라며 "국회의 논의과정을 통해 바뀌면 바뀌는 대로 (유산취득세 방안에) 흡수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인적공제 최저한도는 10억원으로 새로 설정했습니다. 현행 10억원이 최소한 면세점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10억원까지는 인적 공제를 보장해주는 방식입니다. 상속인별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인적공제 합계가 10억원에 미달한다면, 그 부족분만큼 추가로 공제합니다. 아울러 이번 발표에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기재부는 최고세율 인하는 사회적 합의 등을 바탕으로 별도 검토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세수 감소 '2조'…잇따른 감세에 세입 기반 취약
 
정부는 지난 2022년 7월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유산취득세 도입 방침을 공식화했습니다. 낡은 상속세 과세 체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친다는 게 취지입니다. 정부 법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한다면 1950년 상속세법 도입 이후 75년 만에 상속세 법체계가 전면 개편됩니다. 
 
정 실장은 "그동안 우리나라 세제가 여러 선진화된 제도들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남아 있는 몇 개 안 되는 숙제 중 하나였다"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제도 중 하나로서 이쪽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요구들이 많았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기재부는 이달 중 관련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는 방침입니다. 개정안이 연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국세청 과세 시스템 정비 등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2028년 시행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정부안대로라면 유산취득세에서 세수 감소 효과는 약 2조원으로 집계됩니다. 상속세 과세자 비율은 현행 6.8%(1만9900명)에서 절반가량 줄어듭니다.
 
이번 정부안이 시행되려면 여소야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윤석열씨 탄핵 선고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에 대비해 여야가 상속세 개편을 비롯한 감세안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정부의 유산취득세 도입 추진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상속세 개편으로 세입 기반이 약해지면서 국가 재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윤석열정부 들어 법인세와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주요 세목의 과세 기준을 완화하거나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감세 정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세입 기반은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도 현실화했습니다. 더불어 유산취득세 도입으로 고액 자산가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서 부자 감세라는 비판도 함께 나옵니다.
 
민주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유산취득세 도입 발표에 대해 "부자 감세"라고 비판했습니다. 임광현 의원은 "배우자 1명, 자녀 1명을 기준으로 기재부 안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상속 재산 50억원 이하의 1자녀 일반인에게는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른 혜택이 없고, 그 이상 고액 자산가부터 상속세가 줄어 혜택을 보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심지어 유산취득세 도입에 따른 세수 감소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며 "부자 감세를 또 숨기는 것이냐"고 비판했습니다.
 
박진아·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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