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고기 월령 제한 풀어라"…현실화 땐 '제2 광우병 사태'
관세 4배·방위비 이어 '30개월 이상 소고기'…새 압박 카드 가능성
2025-03-12 18:06:00 2025-03-12 18:06:00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미국 축산업계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한국의 소고기 월령 제한을 풀어달라고 공식 요청했습니다.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의 검역 규정이 '불공정 무역 관행'이란 겁니다. 이들은 "200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크게 향상됐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광우병 우려 때문에 지난 2008년 추가합의를 거쳐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했는데요. 소비자 신뢰가 높아진 건 30개월 이상의 소고기가 아닌, 미만의 소고기에 대해서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내달 '상호관세' 앞두고…미, 먹거리 고리로 '압박'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11일(현지시각) 교역국의 불공정 무역관행과 관련해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30개월 연령 제한이 한국에서 민감한 이슈라는 것을 알지만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며 "연령제한 철폐를 위해 한국과 협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건의했습니다.
 
이미 한국은 수년째 미국산 소고기의 최대 수입국(가치 기준)인데도 수출을 계속 늘리려 하는 겁니다. 미국 농무부 등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대한 미국산 소고기 수출액은 22억2000만달러(약 3조3300억원)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는데요. 이어 중국·홍콩(19억8000만달러)과 일본(18억7000만달러) 순이었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미 축산업계를 중심으로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습니다. 이슈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데요.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실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에서 한국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평균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 높다"는 발언을 계기로 우리나라를 향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미국 진출을 계획 중인 해외 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현대차·LG전자·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일본에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노골화하고 있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압박도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관세 4배, 방위비에 이어 '30개월 이상 소고기'라는 새로운 무기가 생긴 셈입니다.
 
실제 농촌경제연구원은 지난해 '2024 미국 대선, 농업·통상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정책 강화의 일환으로 자국 농산물의 수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미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소고기의 국내 개방 확대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으로선 내달 2일 상호관세 시행을 앞두고 '경제 쇼크'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 악재입니다. 내수가 침체한 상황에 상호관세로 수출 길까지 가로막히면 직격타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권력 공백을 틈타 직접적인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USTR은 상호관세와 관련해 "한국 등 21개국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고 관련 문서에 적시하기도 했습니다. 큰 경제규모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국을 상대로 큰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나라라는 이유에서입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사진=연합뉴스)
 
캐나다·EU도 '30개월 미만'…"광우병 줄었지만 가능성 0 아냐"
 
USTR은 축산업계를 포함해 각계의 의견서 접수를 마치고 본격 검토에 들어갑니다. USTR·미 상무부는 국가별로 '상호주의적인 교역 관계'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권고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출할 예정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는 교역 상대국의 모든 규제와 제도를 없애고 여의찮으면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라 앞으로 미국 기업의 이런 요구를 토대로 한국 정부에 제도 개선을 압박할 걸로 예상됩니다. 
 
USTR는 지난해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한국과 합의한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출이 과도기적 조치였음에도 16년간 유지되고 있으며 갈아서 만든 소고기 패티·육포·소시지 등 가공육은 여전히 금지됐다"며 사실상 수입 허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습니다.
 
인간 광우병으로 불리는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에 걸린 사람 수(지난해 2월 기준)는 전 세계적으로 232명입니다. 동물성 사료를 먹인 소고기를 섭취한 사람 가운데 감염자가 많았는데요. 이후 동물성 사료 섭취가 금지됐고 감염자 수가 줄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에 적은 확률이지만 인간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제로(0)인 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캐나다·EU(유럽연합) 등과 체결한 소고기 수입 기준에서도 '30개월 미만'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국민의 생명·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신중하게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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