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재 인턴기자·박현광 기자]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깜짝 선언으로 때아닌 '이념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은 윤석열씨 탄핵을 넘어 치러질 조기 대통령선거에서 외연확장에 나서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국민의힘을 극우로 내몰겠다는 생각도 깔린 겁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이 대표의 '정치 철학 부재'를 꼬집는 비판이 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국민의힘, 보수집단 아냐"
이 대표는 지난 19일 유튜브 채널 <새날TV>에 출연해 "우리(민주당)는 진보가 아니다"라며 "사실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실제로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커다란 후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그동안 진보 정당으로 분류되던 민주당의 정체성을 한 번에 뒤바꾼 한마디였기 때문입니다.
이 대표는 이어 "국민의힘을 보라. 헌정 질서 파괴에 동조하고 상식이 없다"며 "집권당이 돼서 정책을 내지를 않고 야당 발목 잡는 게 일로, 보수집단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수는 건전한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집단인데 그 건전한 질서와 가치의 핵인 헌정 질서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며 "오죽하면 범죄 정당이라고 하겠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의힘을 '극우'로 몰아낸 뒤 보수 진영의 공백을 차지하겠다는 걸로 해석됩니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념논쟁, 적절한지 의문"
하지만 당장 민주당 내에서 반발이 들끓고 있습니다. 때아닌 '이념 논쟁'이 시작된 겁니다. 5선의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고 이 대표를 직격했습니다. 이 의원은 "제가 알고 겪은 민주당은 한순간도 보수를 지향한 적이 없다"며 "민주당 당헌과 강령을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어느 내용을 '보수'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지난 19일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라며 “한 번의 선언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바꿀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탄핵과 조기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지금 보수냐 진보냐 이념논쟁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 이제는 이런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대표의 속내는, 선거를 앞두고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걸로 보입니다. 중도 보수 성향의 표심을 잡아 '굳히기'에 들어가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외연을 확장하다가 진보 진영의 표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부터 나옵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20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이 중도보수 쪽으로 확 쏠려버렸을 때 자칫 잘못하다간 진보 섹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효과를 의도치 않게 발생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정의당, 진보당 등 진보 세력 정당이 예전만큼 세를 구축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중도 보수 행보가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지향해온 가치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힘은 '조롱'…"3일만 지나면 또 말 바뀔 것"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 '우클릭'을 했다가 또 철회하는 등 '갈지(之)'자 행보를 이어간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최근 반도체특별법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허용하자는 취지로 주장하며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나섰지만, 당내 반대로 철회했습니다. 상속세 완화, 근로소득세 개편 등 세제 개편 가능성도 시사하며 수도권 중산층을 공략해왔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9일 "중도보수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된다"며 "반도체특별법의 경우 '몰아서 일하겠다'는데 왜 못 하게 하느냐, 52시간에 예외를 둘 것처럼 하다 철회하는데 누가 중도보수라 믿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어 ""포퓰리즘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 대표의 발언에 '조롱'이 흘러나옵니다. 한 중진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뉴스토마토>에 이 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을 두고 "선거 위장전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이 코앞에 있으니까 지지율을 높이고 외연을 확장한다는 전략적인 생각인 것 같다"면서 "그분은 한 3일만 지나면 또 말이 바뀌어있다. 지켜보자"라며 이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를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 내에서 유일하게 12·3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김상욱 의원 또한 이 대표의 발언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김 의원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당이 다르다고 무조건 폄훼하는 건 옳지 않지만, 진정성이 다소 부족한 선거 전략에 가깝다고 본다"며 "건강한 중도보수로서 진정성을 보이려면 이념에 맞는 비전과 정책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논란이 지속하고 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진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밤 <MBC 100분토론>에 출연해 "유연하다고 봐주시면 좋겠다"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입장과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대표의 '상황이 바뀌었다'는 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가 보수 성향의 기득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로 해석됩니다.
이선재 인턴기자 seonjaelee96@etomato.com
박현광 기자 mu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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