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삼성전자의 이번 사장단 인사는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의 굳건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미래전략실(미전실) 출신들의 부상으로 요약됩니다. 정현호 부회장을 비롯해 한종희(모바일·가전), 전영현(반도체) 부회장이 모두 유임된 가운데, 반도체(DS) 부문은 메모리·파운드리 등 주요 사업부장(사장)의 교체를 통해 반도체 사업의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인사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27일 사장 승진 2명, 위촉 업무 변경 7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5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습니다. 당초 재계에선 이번 인사를 앞두고 정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의 역할 변화가 있을지 주목했었습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유임과 동시에 미전실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맡으면서 그룹 내 지위는 한층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김용관 삼성전자 DS부문 경영전략담당을 비롯해 고한승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 사장, 박학규 사업지원TF 담당은 모두 정 부회장과 같은 미전실 출신 인사로 분류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현재 사업지원TF는 지난 2017년 2월 삼성전자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 미전실 해체 후 계열사 간 업무조정을 위해 신설된 조직입니다. 이번에 정 부회장이 유임되면서 사업지원TF 중심의 구조는 이어지게 됐습니다.
"이재용, 정현호에 힘 실어…삼성 위기 극복은 과제"
재계 안팎에선 삼성 위기의 배경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용 메모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서 실기한 것을 꼽고 있습니다. 그룹 수뇌부가 재무와 회계, 인사 등에만 치우친 나머지 근원적 기술 개발과 글로벌 시장 판세를 읽지 못한 것이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이에 따라 사업지원TF장을 맡고 있는 정 부회장이 책임론에서 피해갈 수 없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새로운 기구를 탄생시키기보다 TF단과 정 부회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며 힘을 실어줬습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에 대한 이재용 회장의 신임이 확실함을 입증한 인사로 보인다"며 "삼성 주변에서는 정 부회장이 이학수급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이학수 전 부회장은 숫자에 밝고 부지런하며 입이 무거운 타입이었다"며 "정 부회장 역시 비슷한 캐릭터로 인사와 재무로 이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과거 '삼성의 2인자'로 불렸던 이 전 부회장은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복심으로 14년을 지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 회장이 9년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면서 사실상 정 부회장이 삼성을 관리해왔다. 현재 '삼성 위기론'이 불거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임에도 이 회장이 다시 힘을 실어준 것"이라며 "정 부회장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 회장을 보좌해 삼성을 재탄생시킬지는 아직 검증은 되지 않았단 점에서 과제이고, 이 회장과 밀월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반도체 사업의 특성상 막대한 투자와 재무 유동성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사업을 점검하고 책임을 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은 무엇보다 중차대합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컨트롤 타워인 사업지원 TF 사령탑인 정 부회장이 1~2년 정도 삼성을 더 이끌어 갈 것으로 점치고 있습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번 삼성의 인사에 대해 "정 부회장이 물러났을 때를 대비한 플랜B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도 읽혀진다"며 "아직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도 남아있어서 당장 정 부회장을 물러나게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본 듯하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향후 정 부회장을 대체할 인물을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이 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최후진술을 통해 "최근 들어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때보다 녹록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삼성과 제게 보내 주신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접하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새로운 각오도 마음속 깊이 다졌다"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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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메모리사업부장 겸직…적자 파운드리는 수장 교체
삼성전자는 주력인 반도체 사업의 근원적 경쟁력 회복에 초점을 맞춘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부회장)에게 직접 메모리 사업부를 진두지휘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내정하고,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과의 2인 대표이사 체제를 복원했습니다.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해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 체제로 강화키로 했습니다. 대표이사로 내정된 전 부회장은 메모리사업부장과 함께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을 겸임합니다. 메모리 기술 경쟁력 회복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인사로 풀이됩니다.
한진만 DS부문 미주총괄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맡게 됐습니다. 파운드리 부문의 경우 수조 원의 적자를 내면서 경쟁력 약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한 사장은 D램·플래시설계팀을 거쳐 SSD개발팀장,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역임했으며 2022년 말 미주총괄로 부임해 미국 최전선에서 반도체 사업을 지휘했습니다.
한 사장이 2022년부터 북미사업부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단 점에서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의 가교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한 사장은 지난 3월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으로부터 HBM3E 제품에 대해 '젠슨 승인' 서명을 직접 받아내는 등의 성과를 낸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연합뉴스)
견고해진 2명 부회장 체제…'집중·쇄신·전환'
DS부문 직속 사장급 경영전략담당 보직도 신설했습니다. '전략통'인 김용관 사업지원TF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반도체 경영전략담당을 맡습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경영전략담당으로 전진배치돼 풍부한 사업운영 경험을 활용, DS부문의 새로운 도약과 반도체 경쟁력 조기회복에 앞장 설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습니다.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사장급 최고기술책임자(CTO) 보직을 신설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남석우 DS부문 글로벌제조·인프라총괄 제조·기술담당 사장을 배치했습니다.
'한종희-전영현' 투톱체제를 유지하고 부문별 대표이사 사업책임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 산하에 품질혁신위원회를 신설하고 한 부회장을 위원장으로 위촉해 전사 차원의 품질 역량을 강화키로 했습니다.
이원진 상담역은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아 마케팅과 브랜드, 온라인 비즈를 총괄합니다. 삼성 첫 여성 사장인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은 브랜드전략위원으로 이동합니다.
경계현 사장이 맡았던 미래사업기획단장은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 사장이 지휘봉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 먹거리 발굴을 주도할 예정입니다. 박학규 DX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은 사업지원TF 담당으로 이동합니다.
삼성전자는 "경영역량이 입증된 베테랑 사장에게 신사업 발굴 과제를 부여하는 등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며 "글로벌 리더십과 우수한 경영역량이 입증된 시니어 사장들에게 브랜드·소비자경험 혁신 등의 도전과제를 부여해 회사의 중장기 가치 제고에 주력하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삼성전자 사장단 인사의 포인트는 2명의 부회장 체제를 견고히 함과 동시에 '집중' '쇄신' '전환' 세 가지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오 소장은 "메모리 사업부를 대표이사 직할체제로 강화한 것은 책임을 지고 조직을 좀더 체계적이고 집중력 있게 관리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파운드리 사업부장을 교체한 것은 새로운 인물로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각오을 보여주는 쇄신의 단면으로 보여진다"고 했습니다.
삼성전자는 부사장 이하 2025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12월 중순에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 내년 사업계획을 논의할 계획입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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