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무관이지만 아쉽진 않습니다
. CJ ENM(035760) 입장에선 얻은 게 많은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습니다
. 11일 열린 제
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CJ ENM이 공동 투자 배급하고 한국계 셀린 송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패스트 라이브즈
’는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 비록
4년 전 영화
‘기생충
’이 일궈낸
‘오스카 신드롬
’의 재현은 실패했지만
K무비 경쟁력은 재차 확인했다는 평가입니다.
CJ ENM은
‘이미경 이름값
’을 재확인했고 미국 시장 인프라 구축의 발판도 마련했습니다
.
올해 오스카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오펜하이머'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사진=뉴시스
올해도 ‘백인들만의 잔치’
먼저 각본상은 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에게 돌아갔습니다. 작년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추락의 해부’는 가장 강력한 각본상 수상 예견작으로 거론돼 왔습니다. 5편의 경쟁작(추락의 해부, 바튼 아카데미,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메이 디셈버, 패스트 라이브즈) 가운데 ‘패스트 라이브즈’가 이변을 일으킬 기대작으로 주목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불발에 그쳤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가 후보에 오른 또 다른 부문은 작품상입니다. 올해 작품상은 사실상 ‘오펜하이머’가 확실시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긴장감 없는 진행 속에 모두의 예상대로 ‘오펜하이머’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오스카’로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1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백인들만의 리그’란 오명을 받아왔습니다. 때문에 4년 전 ‘기생충’이 오스카에 신드롬을 일으키자 전 세계는 아카데미 위원회가 ‘변화’의 의지를 드러냈다며 반겼습니다. 올해 ‘패스트 라이브즈’가 각본상과 작품상 후보에 오르면서 기대감이 상승했지만 결과는 또 다시 ‘백인들의 잔치’로 회귀했다는 평가입니다.
총 23개 부문 수상자(작) 가운데 유색인종은 ‘바튼 아카데미’의 흑인 여배우 디바인 조이 랜돌프(여우조연상), ‘고질라 마이너원’의 야마자키 다카시(시각효과상),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장편애니메이션상) 단 3개 부문 뿐이었습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사진=베니티페어 특별판
이번에도 통한 ‘이미경 이름값’
오스카 수상은 불발됐지만 ‘패스트 라이브즈’,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CJ ENM은 수상 결과에 상관 없이 얻은 것이 많은 듯 합니다.
일단 ‘오스카’ 후보였다는 자체로 영화는 막대한 프리미엄을 얻게 됩니다. ‘오스카 레이스’로 불리는 약 1년 간의 홍보 일정 속에 수많은 영화는 경쟁작을 물리치고 최종 후보작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생충’의 경우 오스카 수상 전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오스카’ 출품을 위한 정교한 홍보 일정을 잡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경 CJ 부회장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부회장은 전 세계가 꼽는 ‘엔터 파워 여성 100인’에 단골로 꼽힐 정도로 글로벌, 특히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워맨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 이 부회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패스트 라이브즈’가 또 다시 오스카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미경 이름값’이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통한다는 점을 입증해 냈습니다.
‘오스카 프리미엄’으로 관객몰이
관객 동원 측면에서도 오스카 프리미엄은 무시 못 할 메리트입니다. 영화 ‘미나리’의 경우 제93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서도 흥행 돌풍을 일으켜 개봉 60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지난 6일 국내 개봉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11일 오전까지 누적 관객수 5만5097명을 기록하고 있지만 앞으로 본격적인 오스카 프리미엄 홍보가 더해지면 흥행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스카 프리미엄’은 사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더 큰 흥행 요소로 꼽히고 있습니다. 국내 한 배급사 관계자는 “과거 ‘패스트 라이브즈’ 공동 투자 배급사인 A24의 작품 ‘문라이트’가 오스카 작품상 수상 이후 북미에서 티켓 수익이 급등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최소한 북미 지역 배급에서 ‘오스카’ 프리미엄은 가치로 환산하기 힘든 타이틀이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문라이트’는 흑인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수상 이후 북미 지역에서 흥행 돌풍이 일어나며 인디 스튜디오에 불과했던 A24가 메이저 스튜디오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CJ ENM이 A24와 손잡고 ‘패스트 라이브즈’에 공동 투자 배급을 결정한 것도 앞으로의 북미 지역 흥행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입니다.
고경범 CJ ENM 영화사업부장은 “블록버스터로 미국 시장에서 승부를 본다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아시아 영화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타깃형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영화계 한 관계자는 “수상은 불발됐지만 CJ ENM은 얻은 것이 많을 듯하다”면서 “미국 내 스튜디오와의 협업을 통해 한국의 제작 시스템을 미국 시장에 전파하는 계기를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CJ ENM 입장에선 ‘패스트 라이브즈’의 오스카 무관이 아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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