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일반적으로 태국과 베트남을 떠올리게 합니다. 온화한 기후 탓에 전 세계 최고의 휴양 국가이자 관광 국가로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맞닿아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 유일의 내륙 국가 ‘라오스’. 낯선 만큼 모든 것이 어색하지만 그 속살을 살펴보면 의외로 우리와 많은 부분이 통할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곳이기도 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의 글로벌 프로젝트 ‘은사마’가 주목하는 해외 거점 국가 라오스의 모든 것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라오스는 대단한 것이라곤 없는 사회다. 사람들은 이를 시시하다고 느끼지 않고 다행으로 받아들인다. 작고 사소해도 위축될 일은 없다. 그저 평온하다. 라오스 인사말이 그런 뜻이다. ‘싸바이 디~’(편안하시죠?)
한국인은 대체로 욕망이 크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어렵다. 행복이 ‘별것’이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문제가 있단 뜻은 아니다. 때로 욕망과 불만은 에너지가 되고 발전의 동력이 된다. ‘니르바나(열반)’는 본래 ‘사라졌다’는 뜻이고 ‘욕망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라오인은 망자가 있는 집을 ‘흐안 디’라 한다. 흐안은 ‘집’이고 디는 ‘좋다’는 형용사다. 상가를 ‘좋은 집’이라 표현하는 라오인. 우리네 정서와는 ‘차안’과 ‘피안’만큼 거리가 있다. 라오인에게 불교적 세계관은 이렇게 언어생활에도 깊게 뿌리내려 있다. 사라지고 꺼진 상태가 됐으니 좋은 상황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행복이 ‘별것’이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지극히 살기 어려운 곳이 라오스지만, 욕망으로 불타오르지 않는 사람이나 별것 아닌 것으로 충분히 불타오르는 이들은 쉽게 만족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라오스다.
비엣인이 운영하는 ‘샴푸방’에서 귀지를 청소 중이다. (사진=오광석 작가)
1. '샴푸방'
“샴푸방에 가보고 싶어요!” 방문자의 말이 신선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설명을 듣고 보니 아침 시장, ‘딸랏싸오’에 있을 만한 곳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딸랏싸오는 수없이 들락거린 곳인데 아직 알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출장 오신 여성분을 모시고 가보니 위양짠 골목 어디에나 있는 머리 감는 시설이었다. 시설이라 표현했지만 머리를 감길 수 있는 개수대와 누을 수 있는 의자로 구성된 간단한 공간. 동네 미용실과 다른 건 동시에 여러 명 머리를 감겨줄 수 있는 미용사들이 손님을 기다린다는 것.
수도 위양짠에는 미용실이 많다. 한 집 건너 한 곳 정도가 아니라 다닥다닥 사이좋게 붙어 있다. 미용실이지만 정작 머리칼을 자를 수 있는 미용사가 없고 머리만 감겨주는 곳이 오히려 많다. 한국인의 시선으로 보면 미용사는 없고 머리만 감겨주니 '샴푸방'이라 부르는 게 오히려 정확한 표현이리라.
라오인 젊은 여성들은 집에서 머리를 감지 않고 미용실에 간다. 이런 미용실은 순간온수기 없이 달랑 샤워기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더운 나라라서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라오인은 인도 사상 영향으로 발을 천하게 여긴다. 발을 관리하는 일은 라오인에게 천한 일이라서 비엣인들에게 넘어갔다. 비엣인에게 불교 영향은 있지만 신체에 서열이 있고 차별을 해야 한단 인식은 덜하다. 라오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귀지를 파주지 않는다. 귀지를 라오어로 하면 ‘귀똥’이다. 똥을 치우는 일로 인식하니 기피할 수밖에. 이 일도 비엣인이 운영하는 미용실 차지가 된다. 처음에 비엣인 여성들이 들고 있는 귀 파는 도구들을 보고서 중이염이 걱정돼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체험하겠다 맘먹으면 모든 두려움을 넘을 수 있다. 헤어컷, 염색, 귀지 청소, 얼굴 마사지와 마스크팩. 이런 토털 케어를 받고도 비엣인 미용실에 내는 돈은 대체로 1만원을 넘지 않는다.
2. 카트 없는 골프장
라오스 골프장은 한국 골프장과 달리 인원 제한이 크지 않다. 동반자 없이 혼자서도 칠 수 있고, 최대 여섯 명까지 플레이도 가능하다. 한국 골프장에선 전동카트 없이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하지만 라오스 골프장은 골프백을 수동카트로 끌어줄 캐디와 함께 프로 골퍼처럼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전동카트가 있는 골프장에서 골퍼가 걸어서 치겠단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다. 전동카트를 타면 편하고 빠르게 칠 수 있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다른 캐디들은 전동카트를 모는데 내 캐디만 수동카트에 캐디백 싣고 걷는 수고를 하고 있다면 미안해지기도 한다.
라오CC는 이런 심적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골프장이다. 인민혁명당 산하 조직인 청년동맹의 체력 단련 시설로 시작한 라오CC는 플레이어를 위한 전동카트가 없다. 직업 선수처럼 오로지 걸어서 골프를 쳐야 한다. 초기엔 저질 체력으로 18홀을 돌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 건기 끝 더운 날씨에도 한 바퀴는 거뜬하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라오CC에서 동반자들과 플레이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에서 골퍼들끼리 ‘운동’ 한 번 하자는 게 인사였는데, 라오CC에서라면 정말 ‘운동’일 수도 있다.
18홀 기준 요금은 평일 5만원, 주말 6만4000원이다. 캐디는 플레이어 1인당 한 명이고 팁으로 15달러, 한국 돈 2만원 정도를 받는다.
볼라벤 고원의 커피밭. (사진=제국몽)
3. 커피 산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하루 여섯 잔 이상을 마시는 커피 중독자였다. 그런데 라오스에 와서야 커피를 볶는 다양한 방법을 터득했다. 원두를 갈아 종이 필터로 커피를 내릴 줄도 알게 됐고, 커피 맛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라오스에 있다가 인도차이나 선진국 태국에 나간 기념으로 스타벅스에 가는 호사를 누려보기로 했는데, 커피가 맛이 없어 한 모금 넘기고 모조리 버렸다. 다른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게 맛있지만 커피는 직접 만들어 마시는 게 가장 좋다는 경험을 한 것이다.
여전히 나는 커피 중독자지만 과거에 비하면 의존도가 많이 줄었다. 로부스타는 베트남 쭝웬그룹 G7을 즐겨 마신다. 커피 크림 설탕이 배합된 3IN1. 아침 먹기 전 반, 식후 반을 더해 한 잔. 그 이후엔 드립한 아라비카를 마시거나 커피 전문점으로 간다.
라오스의 대중적 커피 체인점인 태국 자본 아마존의 아메리카노 값은 1달러, 라오스 토종 체인점 씨누크는 2달러 남짓.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약 3달러. 내가 선호하는 체인점은 씨누크다.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왓씨므앙 사원을 바라보면서 왼쪽 담장을 끼고 들어간 골목길에 있는 카페 ‘더 리틀 하우스’. 내가 집을 지으면 들여놓을 계획인 등나무 의자가 있어 편안한 느낌이 든다.
며칠 전 잘 가는 점심 식당에 갔다가 양도 적당하고 빨갛고 예쁜 드립 주전자가 눈에 들어와 사뒀다. 견물생심.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항상 준비 중이다.
발로 밟는 마사지. 태국 치앙칸에서 받았던 인생 마사지. (사진=제국몽)
4. 마사지
지갑에 항상 넣고 다니는 카드가 하나 있다. 내가 다니는 마사지샵 멤버십 카드. 회원이 되기 위해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한 건 아니고 미리 충전만 하면 된다. 선불한 액수에 따라 할인율이 달라진다.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이유는 할인보다 예약 때문이다. 미용실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사지샵도 위양짠 전역 큰길과 골목을 가리지 않고 퍼져 있다. 시설과 기술,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내가 오일 마사지나 기능성 마사지를 꺼리는 데는 비용만 올라갈 뿐 마사지 자체가 약해지는 탓이다. 무엇보다 다른 게 다 맞아도 마사지사와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처음 가는 샵은 복불복이다. 다니는 샵이 정해지고 단골이 돼 마사지사를 겪다 보면 내 몸을 이해해주는 짝을 만나게 된다.
멤버십을 유지하는 최고급 마사지샵의 라오 전통 마사지 요금이 팁 포함 1시간에 10달러 정도. 보통 2시간 정도 받으니까 최대 3만원이면 최고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라오스=프리랜서 작가 '제국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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