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허지은 기자] 보험협회가 보험업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자격 미달의 보험설계사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에서는 하루 수백명에 달하는 설계사의 범죄이력을 검증하는 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며, 범죄이력조회권 등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협회의 보험설계사 등록 과정에서 범죄경력 확인 등 검증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절차 개선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 협회는 2022년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보험설계사 등록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결격요건 서류는 보험설계사 등록을 원하는 사람이 양식에 나온 결격 사유에 대해 해당 여부를 기재하게 돼 있다. 이 서류를 받아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보험협회가 설계사 신청인의 결격 사유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절차이기 때문에, 만약 범죄 경력 등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이 거짓으로 서류를 작성하더라도 등록 절차에서 걸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은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의 허술한 보험설계사 등록 과정으로 인해 보험'사기' 설계사 등이 검증 없이 보험설계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협회의 중대한 업무위반 사항을 즉시 시정하고, 금융당국과 논의해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험설계사로 활동을 하려면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실시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금융감독원이 정한 '대출모집인 등록 심사 매뉴얼'에 따라 협회에 등록해야 한다. 등록신청을 할 때에는 소속보험회사와 주민등록번호, 주소지를 기재한 신청서와 결격요건을 기재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보험업법 제 84조에 따라 △보험업법,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으로 벌금 이상의 형 또는 집행유예를 받은 경우 △보험 모집과 관련해 보험료·보험금·대출금을 다른 용도에 유용한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 △보험업법,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라 과태로나 과징금 처분을 받고 이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 등에 대해 보험설계사 등록을 금지하고 있다. 결격요건 확인 서류(등록신청인 고지사항)에는 이같은 사실에 해당하는지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금감원 매뉴얼에 따라 결격요건 기재 서류의 내용을 협회가 사실조회 결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범죄 경력 조회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보험협회의 설명이다. 보험협회가 개인의 범죄 경력 조회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범죄경력조회 대상자마다 일일히 서류를 갖춰 경찰서나 시도경찰청에 신청해야 가능하다. 보험설계사 등록 신청인이 100명이라면 100건의 범죄경력조회 신청서류를 접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험협회 관계자는 "현재 등록돼 활동하고 있는 보험모집인은 45만명에 이르고, 등록이나 등록 취소(말소) 신청을 하는 인원도 하루 수백명에 달한다"며 "매일 수백명의 범죄 경력조회를 반복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양 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생보협회는 총 117만9666명, 손보협회는 총 119만6219명의 보험설계사를 등록했다.
이어 "보험설계사들은 생계 때문에 일선에 나선 분들이라 등록 절차가 하루만 미뤄져도 피해가 있다고 하시는데 경력 조회를 위해 수 일을 허비하는 것도 난감한 상황"이라며 "보험협회가 보험모집종사자 등록 신청인에 대해 범죄 경력 조회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대출모집인 등록 심사 매뉴얼' 중 결격사유 관련 내용. (자료 = 금융감독원)
허지은 기자 hj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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