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홍연 기자] "한 달 월급이 30만원일 때 아파트 한 채가 700만원이었습니다. 그땐 청약통장도 필요 없었어요. 줄만 잘 서면 분양받을 수 있었죠."
직장을 은퇴하고 자영업에 종사하는 60대 중반 윤모(70)씨는 지금 젊은 세대가 믿기 어렵다는 듯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윤씨는 1983년 결혼과 동시에 서울 외곽 신도시의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당시에는 '내 집 마련'이 인생의 당연한 과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1970~80년대는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전환기였습니다. 정부는 급속한 도시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내세우며 본격적인 대규모 공급에 나섰습니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과 공공주택 공급 확대는 실수요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중산층 직장인이라면 일정한 저축만으로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자 경제가 성장하면서 주택시장은 안정세를 이어갔습니다. 당시에는 대출 규제가 지금보다 훨씬 완화돼 있었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70~80% 수준이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보다는 꾸준히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전세 중심의 주거 문화도 부모 세대의 자산 형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80~90년대에는 전세 제도가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세입자들은 전세금을 ‘주거 사다리’의 첫 단추로 활용했습니다. 당시 전셋값은 매매가의 절반 수준이었기에 월세 부담 없이 저축을 이어가다 일정 시점에 매입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0년대 자가 점유율은 50% 미만이었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60%를 넘겼습니다. 주택 공급 확대로 중산층의 내 집 보유율이 빠르게 높아진 결과입니다.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까지 주택구입부담지수(K-HAI)는 전국 평균 기준 60 전후로, 현재보다는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2021~2022년에는 80~90 수준까지 급등하며 자녀 세대의 주택 구입 부담이 과거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X세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내 집 마련에 나서던 시절은 일종의 '빚테크 시대'였다"며 "부채를 지렛대 삼아 강제 저축처럼 원리금을 갚으며 자산을 불려온 세대"라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의 ‘집 가진 세대’는 안정적인 자산 축적을 이루며 한국 사회의 중산층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주거 현실은 그 기반이 흔들리며 젊은 세대들의 주거 마련 환경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평가가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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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산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아파트. (사진=뉴시스)
규제 강화·집값 급등·일자리 불안...2030 주거 사다리 끊겼다
"치솟는 집값에 매매는 언감생심이죠. 청약 당첨은 로또고, 전세도 대출 없이는 어렵죠." (35세 중견기업 직원 L씨)
2030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이제 '가능성'이 아닌 '기적'에 가까워졌습니다. 그 배경에는 제도, 시장 환경, 세대 간 자산 형성의 격차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금융 규제를 도입하고 강화해왔습니다. 2007년부터는 청약 가점제가 적용되며 실수요자 중심의 제도 개편이 이뤄졌습니다. 이후 2010년대 후반부터는 다주택자 세금 강화, DSR 규제, 금리 인상 등 복합적인 시장 환경 변화 속에서 무주택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집값은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통계청과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주택구입부담지수(K-HAI)와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모두 장기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비교적 낮은 주택 가격과 느슨한 금융 규제 덕분에 기존 세대가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반면 청년층이 이미 높아진 집값과 강화된 규제, 불안정한 소득 구조 속에서 진입조차 어려웠습니다.
매매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셋값마저 천정부지로 치솟고, 사기 피해와 깡통전세 등의 위험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최종 결정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누적 3만3978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정부는 청년층을 위한 다양한 주거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청년 전용 공공주택 확대, 무주택자 대상 금융 지원 강화 등 실질적인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청년 일자리 문제도 내 집 마련 포기의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대출을 받더라도 종잣돈을 마련하려면 일정한 수입의 기반이 있어야 하지만 청년층에게는 지속 가능한 월급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드뭅니다. 최근 10년 사이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이 32.0%에서 43.1%로 늘면서 질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전문가들은 일시적 지원보다는 청년층의 소득·고용·주거 안정성을 연계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김호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는 청년 일자리, 국토교통부는 주거 정책에만 집중하면서 부처별로 기능이 분절된 ‘칸막이 행정’이 문제"라면서 "이제는 청년 삶 전반을 고려한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송정은·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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