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아 정치부 기자
공전을 거듭했던 국회가 84일 만에 가까스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국회 파행의 단초가 됐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법안들은 오히려 합의 처리 가능성이 떨어졌다. 특히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법 개정안은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상화'라는 미명 하에 이른바 '원 포인트' 합의문을 만들었다. 합의문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한을 연장하되, 두 개의 특위위원장을 교체하면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각각 나눠 갖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이었던 심상정 의원은 국회 정상화와 함께 일종의 '해고 통보'를 받았다. 1년짜리 위원장 계약이 끝났으니, 이만 방을 빼라는 통보였다.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해 12월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열흘 간의 단식까지 불사하면서 '민심 그대로' 투표율이 의석수에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 물꼬를 텄다. 이후 민주평화당·정의당과 함께 선거제 개혁 방향을 이끌어 지난 4월 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사법 개혁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 의지를 갖고 추진해오던 심 위원장이 교체되면서 한순간에 추진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설령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를 한국당이 가져가지 않더라도 특위 내 한국당의 입김은 세질 수 밖에 없다. 한국당은 이번 교섭단체 간 합의를 통해 자당 몫 정개특위 위원수를 1명 늘렸는데,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해온 그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 안팎에서는 새롭게 연장된 정개특위에서 합의의 단초는 커녕, 뚜렷한 성과를 낼 지에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이가 많다.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시간끌기'에 또다시 허송세월을 보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야3당 대표는 선거제 개혁의 물거품을 우려하며 민주당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당을 향해 "정치개혁 논의의 주도권이 반개혁 세력인 한국당에 넘어간다면 선거제 개혁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라며 "선거제 개혁의 책임 있는 완수를 위한 의지와 방도를 밝히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 의지의 출발점이 정개특위 위원장을 민주당이 맡아 정개특위를 책임 있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제 개혁은 촛불 시민들이 '민심 그대로 선거제도'가 필요하다는 열망 위에서 이뤄졌다. 야3당의 반발과 함께 국민의 우려스러운 시선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다툼으로 촛불혁명의 시민 요청이 법제화 되는 기회를 뺏어서는 안 된다. 집권여당의 결단력과 책임있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박진아 정치부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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