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재계의 별들이 지고 있다. 1970년대 이후 몰아친 산업화 바람을 타고 지금의 글로벌 기업의 모태를 다진 거목들이 연이어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 건강 악화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사람들도 늘어나며 재계는 세대 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그룹은 이미 40~50대의 젊은 총수가 경영 전반을 이끌고 있으며 30대그룹의 상당수도 3·4세 경영인들이 부상 중이다.
올해 들어 재계는 큰 어른들을 잇달아 떠나보냈다. 지난 1월 말 삼성가 맏이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세상을 떠난데 이어 지난 3일에는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인희 고문의 남편이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맏사위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도 지난 4일 아내 뒤를 따라갔다. 이인희 고문과 박용곤 명예회장은 모두 지금의 한솔그룹과 두산그룹의 기틀을 다진 인물들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는 한참됐지만 그간 재계의 큰 어른 역할을 해온터라 많은 재계 인사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7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사진/뉴시스
이들 외에도 '산업화 세대'로 분류되는 다수의 재계 원로들이 건강 상의 이유로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5년째 와병 중이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건강 악화설이 나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17년 신년사 이후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올해로 백수(99세)를 맞은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도 지난 2017년 6월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힘들다는 한정후견인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자연스레 재계의 세대 교체로 이어졌다. 지난해 5월 고 구본무 전 LG 회장의 별세가 변곡점이 됐다. 당시 LG전자에 재직 중이던 구 전 회장의 아들 구광모 상무를 그룹 회장으로 파격 발탁하며 만 40세의 젊은 총수를 맞이한 것. 비슷한 시기 공정거래위원회가 60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발표하며 삼성과 롯데의 동일인(총수)을 각각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으로 변경한 점도 세대교체의 가속화를 견인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공정위는 "기업집단의 경영 현실을 반영하고 공정거래법상 기준에도 부합하는 인물로 동일인을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종전 동일인(이건희 회장, 신격호 명예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종전 동일인 이외 인물이 해당 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올해의 동일인 명단 변경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우선 LG(구본무), 두산(박용곤) 등 지난 1년간 세상을 떠난 동일인이 교체 대상이다. 대림(이준용), 효성(조석래) 등 기존 동일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경우도 고려의 대상이다.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회장이 경영 퇴진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최근 1~2년간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감안될 수 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9월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이달 중엔 주주총회를 거쳐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주력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엘리엇의 공세로 중단된 순환출자고리 문제만 해결하면 사실상 경영권 승계를 마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단순히 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동일인이 변경되지는 않는다"며 "올해 발표를 앞두고 기업들에게 관련 자료를 받는 등 사전 작업을 진행 중"이라 전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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