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필자가 발표한 졸시 '나쁜 아버지, 나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아버지가 시인인데/ 나는 왜 국어시험에서 시와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틀리냐고/ 영어시험에서도 시와 관련된 문제만 나오면 틀리냐고/ 하소연하는 고등학생 딸이// 시를 감상하고 느끼는 대로 답했는데/ 그게 왜 틀리냐고/ 그게 무슨 문학이고 예술이냐고/ 다짜고짜 따지는데/ 그러면 그게 수학문제지 무슨 문학문제냐고/ 억울하다는 듯이 따지는데// 나는 그런 딸의 하소연에/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시로 표현하면 좋겠다고 생각만 하는/ 나쁜 아버지고 나쁜 시인이었다. '나쁜 아버지, 나쁜 시인' 전문 ('시와 반시' 2016년 가을호에 발표)"
이 작품은 시 감상을 일방적으로 강요당한 딸의 불만이 전편에 넘쳐나고, 그에 대해 명쾌하게 답을 주지 못하는 시인의, 아버지의 난처함이 시의 주된 목소리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상당수의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감정으로 이 시를 읽어낼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문학 교육의 현실은 이렇다. 시에서처럼 개인 고유의 감정은 보호받지 못한다. 무시당한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주입식으로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럴 경우, 청소년기에 왕성하게 피어나고 확장되어야 할 상상력이나 창의적인 생각이 멈춰버린다는 위험을 낳는다. 또한 해답이 제시해주는 틀에 갇혀 버릴 수도 있고, 시가 어렵다는 선입관에 노출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의 문학 교육 방식이 별로 바뀔 것 같지 않아 건강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교육을 받은 세대가 대물림 하듯이 후학들을 가르치고, 또 그 후학들이 다음 세대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가르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럼, 왜 갑자기 이 시점에서 시문학 교육 타령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이렇게 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과연 대학에서도 보다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교육을 받고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에서 출발한다. 그로 인해 우리 젊은이의 사고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상상력과 창의성을 생성시킬 교육을 담당해야 할 인문학과 예술 관련 분야의 학문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는 점점 악전고투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구조조정의 핵심으로 거론되면서 이들 학과가 통폐합 우선 대상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지금은 '인문학의 개화(開花)’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어둡다. 물론 상상력과 창의성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이 갖는 공통의 영역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과학이 인류 발전에 필요한 획기적인 창조품의 개발에 기여한다면, 인문학은 그 창조품에 아름답고도 고귀한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를 입히는 작업을 행해야 한다. 이 양자가 서로 어우러져 융합의 정신을 발휘할 때, 세상은 발전하고 살만한 곳으로의 행보를 계속할 수 있게 된다. 문화라는 것은 인간이 세상을 향해 분출하는 총체의 것이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식과 따뜻한 삶에 대한 지향을 품고 있을 때, 문화는 그 값어치가 발휘된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17년 1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인문학 및 인문정신 문화 진흥기본계획' 은 고사되어 가는 인문학의 회생에 호흡을 불어넣을만한 것이었다. 그 실행계획의 하나에는, 초중고 교과 수업 시간에 매학기 책 한 권 읽기나 모든 계열의 대학생들에게 인문강좌를 필수 학점으로 이수하게 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학생들이 이들 수업 시간을 통해, ‘공존하는 세상 만들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나 ‘창의성과 상상력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본계획이 발표된 이후, 충실하게 그 계획이 제대로 실행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적극적인 홍보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예술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힘이 생겨, 상상력과 창의를 가득 품은 작품 생산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은 곧, 우리가 앞으로 먹고 살아야 할 일체의 행위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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