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현직 여검사의 '#me too'…피해자 용기에만 기대선 안돼
2018-01-31 06:00:00 2018-01-31 06:00:00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킹 목사는 '우리는 결국 적의 말보다 친구가 지켰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소속 서지현 검사는 검찰 간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할 때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말리지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주변 검사들은 강제추행죄를 목격했는데도 이를 말리지 않은 방조범이다. 권력서열이 엄격한 검찰 조직이라고 하나, 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할 당사자들이 몸소 '강약약강'을 보이는 현실이 씁쓸하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 말미에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Me Too) 해시태그'를 달았다.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여배우들의 이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끌어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서도 '#○○○_내_성폭력'으로 문제가 일부 공론화되고, 한샘·현대카드에 다녔던 여성들도 피해를 호소했다. 집단적 고백과 공론화 이전부터 피해는 꾸준히 있었으며, 대부분 미미한 처벌로 가해자들은 멀쩡히 조직 생활을 이어나갔다. 당사자에게 사과조차 받지 못한 서 검사와 달리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는 검찰국장까지 올랐다.
 
가해자의 부적절한 처신과 더불어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한 자성과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피해가 반복됐다. 서 검사는 "'남자 검사들 발목 잡는 꽃뱀이다'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면서 "검찰 내 성폭행도 이뤄졌지만 전부 비밀리에 덮어졌다"고 했다. 현직 여자경찰관 A 경위도 동료 여경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고하게 도운 뒤 조직 내에서 부당한 음해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직후 당시 서 검사를 도우려다 검찰 간부로부터 "피해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들쑤셔"라는 호통을 들은 임은정 검사의 경험과 똑 닮은꼴이다.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서 검사의 용기를 응원하나 더는 문제를 피해자들의 용기에만 기대선 안 된다. 공론화를 통해 문제 해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만큼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재발 방지뿐 아니라 예방을 위해서라도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한 자성과 젠더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법무부는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엄정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력한 대책 마련으로 여성들이 반복적으로 피해 사실을 성토하며 친구가 지켰던 침묵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날을 고대한다.
 
홍연 사회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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