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국가 화학물질 안전관리제도와 기업 안전책임 개혁의 골든타임 놓치지 말자
2016-05-25 06:00:00 2016-05-25 06:00:00
온 나라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인한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이미 가족을 잃었거나 지금도 고통 받는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피해자들의 눈물 앞에선 모두가 죄인이다.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특별위원회 구성과 특별법 제정에 나서고 있다. 정부 책임을 철저히 묻겠다며 정부 부처 호출을 시작했다. 그런데 국회에 묻고 싶다. 과연 국회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소비자는 국회에도 책임을 묻고 싶다.
2002년 첫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2011년 뒤늦게나마 보건복지부를 역학조사에 나서도록 한 것은 몇 명의 의사였다. 당시에 국회는 나서지 않았다. 역학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오고 당시 1차 조사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를 비롯한 피해자가 속출했는데도 국회에서 특위나 특별법 얘기는 없었다. 국정감사를 수차례 하면서도 몇몇 소수 의원의 힘없는 외침 외에 국회는 침묵했다. 피해자들이 피눈물을 삼키며 광화문에서, 여의도에서, 런던에서 외로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외칠 때 국회는 조용했다. 5년이나 지나 검찰 수사로 판세가 바뀌고 나니 그제야 이 당 저 당 나서는 모습이 한심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그나마 피해자와 함께 노력했던 몇몇 의원들을 20대 국회에선 볼 수 없어 아쉽다. 정부가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킬 책임’을 방기했다면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정부와 국정을 감시하고 감독할 책임’을 방기했다. 누가 누구를 탓하려 하는가!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가 우선이다.
보건복지부, 환경부, 국가기술표준원 등 관련 부처가 국회에 불려 다니고 국회에 낼 자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원료가 개발된 1994년,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출시된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관련 부처는 묵은 기록까지 찾아내 자료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사건 실체와 관련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국회의원들의 호출과 질문에 답하느라 정부가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할 시간과 피해자, 소비자, 시민사회와 소통할 시기를 놓칠까 걱정스럽다.
 
정부는 피해자를 위한 보상안과 소비자를 위한 개선안을 만드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국회는 무질서한 특감으로 정부의 힘을 빼거나 분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당끼리 의원끼리 경쟁하기보다 종합적이고 이성적인 눈으로 가습기 살균제 특별 감사를 실시하기 바란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피해 보상 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관련 정부 부처는 역할 분담을 현명히 하여 늘고 있는 피해자 현황을 파악하는 데 힘을 모으고, 더 이상의 피해와 유사한 피해가 없도록 생활제품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사전사후 관리시스템 전반을 검토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와 소비자, 그리고 시민사회가 인정할 만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은 제대로 된 피해보상과 더 이상의 피해가 없도록 문제의 근원을 없애는 데 관련 부처의 힘을 집결할 때이다.
 
화학물질 국가관리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업 안전책임을 강화하자.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만 하다가 자칫 화학물질제품으로부터 소비자의 안전을 지켜낼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제도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시민사회의 냉철한 감시와 열정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국회와 시민사회는 유해 화학물질과 관련 제품의 시장 진입을 방지하고 기업의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알맹이 없는 현행 소비자피해보상제도를 전면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총체적 부실 해결에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 대응이 시급하다
이번 사건은 화학물질과 화학제품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참사인 만큼 통합적인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따지되 누구의 잘못인지보다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요한 일이지만 책임자 처벌을 위한 부처 간 책임 따지기에 힘을 빼지 말아야 한다.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 방안 마련이 우선이다. 현재 각 부처는 독성 관리, 화학물질 관리, 제품 관리, 표시 관리로 업무가 분장되어 있기 때문에 총체적 부실 해결과 참사에 따른 피해보상방안을 마련하기에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개별 부처가 따로 따로 대처하기보다는 국무총리실이 나서서 생활 속 화학물질 국가 관리시스템의 문제를 진단할 특별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각 부처는 소비자피해 예방 대책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문은숙 서울연구원 초빙선임연구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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