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직후, 한 언론사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20대 국회에서 추진되기를 바라는 법안·정책'을 설문조사했다. 대기업이 언제든 국회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기에 그 내용과 의미를 간략히 본다.
먼저, 2015년 확정되어 2017년까지 유예된 섀도우보팅 제도(Shadow Voting)폐지를 앞당겨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섀도우보팅은 주주총회 무산을 방지하고 소액주주 권한행사라는 순기능 외에도 매수·압력을 통해 소수 대주주의 경영권 장악이 용이하다는 역기능이 있다. 전자투표 활성화는 섀도우보팅의 순기능을 대체할 수 있기에 섀도우보팅 폐지는 빠를 수록 좋겠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확대 및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해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의미 있다. 현행 상법상 주주대표 소송제도는 지배주주 결정으로 계열사 주가가 떨어져 손실이 발생해도 원인제공자인 지배주주에게 책임 묻기가 어려우며 단지 계열사 이사에게 민사소송이 가능할 뿐이다. 이를 지배주주와 이사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공공 소프트웨어에 대한 대기업의 참여를 넓혀 달라는 요구도 있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동반성장 차원에서 공공 소프트웨어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며 국방·외교·치안·전력분야 등에 예외로 허용한다.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고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를 염두에 둔 요구인데, 갈등이 예상되지만 대기업의 중소기업 지원을 통한 공동참여 방식 등 상생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사에 대한 금융지원 요구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미래의 먹거리라고 잘못 예측한 해양플랜트 분야는 부족한 원천기술과 세일가스 혁명에 편승한 과도한 수주로 경영이 악화되고 유가하락에 따른 수주급감으로 나락에 빠졌다. 선박분야 또한 수주절벽에 봉착해 좌초 중인데 중국 같은 자국수요도 없고 글로벌 선사와의 연합도 구축하지 못했던 가운데 경영진의 과도한 급여 등 부실경영까지 불거져 조선해운업계에 대한 국민 시선은 차갑다. 금융지원에 대한 입법요구는 과도하며, 구조조정 등 회생절차에 충실하길 바랄 뿐이다.
그 밖에 몇몇 요구가 있었으나 가장 실망스런 것은 '온실가스배출권 및 할당에 관한 법률' 개정 요구이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탄소배출량 감축을 선언했고 이를 위해 기업에게 배출량을 정해 주고 이를 권리화 한배출권을 기업에게 무상으로 할당했다. 탄소배출을 줄여 배출권이 남는다면 판매하여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초과하면 다른 기업의 배출권을 구입하여 상쇄하거나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기업요구의 핵심은 배출권 구입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환급해 달라는 것이다. 요컨대 기업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초과했을 때 기업이 구입 할 배출권을 국민이 지급하라는 것이다. 할당량 초과 의미는 기업의 경제활동이 많았다는 것이고 이익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익은 기업이 챙기고 초과비용은 국민이 내라는 몰염치한 요구이다.
정부 대응 또한 답답하다. 기업은 계속하여 할당량이 적다고 반발하더니 이제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에도 처음엔 기업들이 과소할당을 주장했으나 결과는 과잉할당에 의한 공급초과였고, 그로 인해 배출권 가격은 폭락했다. 실제로 이번 배출권 정산에서 배출권 보유량이 실제 배출량보다 700만톤 초과했다. 그런대도 정부는 기업의 차년도 배출권 차입한도를 지금의 10%에서 20%로 확대하더니 국가보유분배출권(1400만톤)까지 어느 정도 풀겠다고 한다. 이러한 발상으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기후변화대응 의지는 기업에게도 국가에게도 기대할 수 없고 오로지 국민의 몫임을 확인하게 한다.
살펴보았듯이 대기업의 요구가 모두 타당하거나 부당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당함을 구별할 능력이다. 국민의 대표라는 20대 국회에게 당부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는 말이 있다. 옳지 않은 하나를 없애 여럿을 살린다는 불가의 가르침으로, 얽매이는 마음에서 벗어나면 그릇된 것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입법과 개정에서 자본에 얽매여 떠밀리지 말고 정도만을 추구하여 작게는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크게는 국민과 지구에 기여 보필하기를 바란다.
송상훈 (사)푸른아시아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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