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로빈슨 감독의 영화 '꿈의 구장' 중 한 장면. 아버지와 아들이 캐치볼을 한다. 해가 붉게 떨어진다. 저녁노을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하고픈 말이 있었다. 아버지도 해주고픈 말이 있었다. 아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아들에겐 응어리였다. 속마음이었지만 아버지에겐 쉽게 꺼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난다. 어색한 시간이 흐른 뒤 아들이 입을 뗀다. "아버지 캐치볼 할래요?", "좋지."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땅거미가 질 때까지 공을 주고 받는다. 던지고 받고. 아버지와 아들은 얽히고 설킨 감정을 던진다. 아들이 던지는 공은 '미안하다'는 마음이었고 아버지가 던지는 공은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아버지와 아들의 캐치볼 장면은 미국 남자를 울렸다. 그들에게도 아버지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으리라. 미국인들에게 야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애덤 라로시(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은퇴가 화제다. 14살 아들 드레이크를 거의 매일 야구장에 데려갔던 라로시는 아들의 라커룸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윌리엄스 사장의 말을 듣고 17일 은퇴를 선언했다. 라로시는 자신의 트위터에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적으며 "아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아버지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가 아들을 위해 포기한 연봉은 1300만달러(155억원)다. 라로시에게도 캐치볼의 추억이 있었다. 야구 선수출신인 그의 아버지 데이브 라로시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코치였다. 꼬마 애덤 라로시는 아버지 데이브 라로시를 따라 야구장을 드나들었다. 라로시는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에 갔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코치의 아들 꼬마 라로시를 지켜보던 선수는 어느덧 감독이 됐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현 로빈 벤추라 감독이다.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매일 매일 열리는 프로야구가 신기했다. 야구가 자연스레 일상으로 들어왔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보았던 헐리우드 영화에선 가끔씩 아들과 아버지가 스포츠로 어울리는 장면이 나왔다.
때로는 럭비공을 주고 받기도 했고 또 때로는 야구공을 주고 받기도 했다. 부러웠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캐치볼'의 '캐'자 조차도 꺼내지 못했다. 그 시대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들과 캐치볼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끔씩 듣는다. 내 또래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들로서 못했던 캐치볼을 아버지로선 성취한 셈이다. 꼭 캐치볼일 필요는 없다. 축구공이면 어떻고 농구공이면 어떤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도 스포츠에서 '가족'을 얘기할 때가 됐다. 관람이든 체험이든 가족 단위 스포츠는 가장 이상적인 스포츠문화가 아닌가? 프로스포츠의 마케팅적 관점에서 가족 단위 관람객은 대를 이어갈 로열티 충만한 고객을 의미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가족이 함께 하는 스포츠는 세대간의 소통이자 정서적 교류이다. 개인적 관점에선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기억이자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동대문운동장과 효창구장은 가족을 떠올리기엔 삭막했다. 2000년대 야구장도 아이들과 함께 하기엔 욕설과 폭력이 빈발했다. 이젠 인프라도 어느 정도 갖춰지고 있는 듯하다. 관람을 위한 단순한 stadium(경기장)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park(복합공간) 개념을 도입한 최신식 경기장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가족 스포츠를 위한 시설과 문화가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언젠간 한국영화의 한 장면, 무뚝뚝 부자간의 말없는 캐치볼이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와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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