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가 검열 이슈로 연일 시끌시끌하다. 지난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센터가 기획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팝업시어터'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다른 누구도 아닌 주최측으로부터 공연방해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연극인들은 지난 주말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간 중견 예술가들에 대한 검열 논란에 이어 이제 막 대학로에 데뷔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까지 검열 논란이 번지자 연극인들이 전방위로 일어서는 모양새다.
올해 들어 연극계에서 검열이슈는 시시때때로 불거져나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지원 사업의 대상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배제되고, 문예창작기금 분야에서 이윤택 연출가가 배제됐다는 사실이 지난 9월 언론 보도와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정당한 절차에 따라 심사를 받고 높은 점수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각 기관은 심의위원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이들을 지원에서 배제시켰다. 각각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이력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박근형 연출가 배제 의혹은 최근 '팝업시어터' 사태가 터진 이후로도 국립국악원에서 또 한 번 불거져나왔다. 다른 단체와 협업하기로 한 공연에서 불과 공연 2주 전 박 연출가와 그가 이끄는 극단이 배제됐다.
문제는 각 기관들은 '오해'라고 해명한 후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불통의 태도야말로 예술가들의 시위가 계속 이어지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다. 만에 하나, 설령 오해라 할지라도 예정된 공연이 윗선의 누군가에 의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진 만큼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이들 기관은 모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만큼 문체부 장관의 의지가 중요하다. 백번 양보해 담당 직원들과 예술가 사이에 빚어진 우발적 문제라고 해도 문체부는 산하 기관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다.
나아가 국가와 정권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국가가 확립하고 지켜나가야 할 영속적인 예술지원 정책에 대해 고심해야 한다. 예술이 사회현실과 떨어져서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민과 관이 함께 좌우진영의 논리를 초월하는 예술지원의 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순수예술은 국가의 지원 정책에 기댈 수 밖에 없다. 해외의 경우처럼 순수예술을 향유하는 관객문화가 깊이 뿌리 내린 것도 아니고 기부금 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나 산업적 측면에서도 기초예술 육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지원기준과 절차를 투명하게 해 공정한 경쟁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예술의 진정한 서포터가 되어야 할 국가가 오히려 통제와 검열을 일삼고 있으니 눈과 귀가 의심될 정도다. 국가가 아닌 대기업이 지원하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게 더 낫다는 연극인들의 한숨 섞인 푸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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