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소통이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타협이야말로 소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대 정치적 자산이다.
국어대사전은 '타협'(妥協)에 대해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으로 정의했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강제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이해에서 출발해 치열한 논쟁과 협의, 양보를 거쳐 이르게 되는 과정이 바로 타협이다.
이는 동시에 정치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기도 하다. 사회 제집단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조정, 하나된 국론을 형성하고 이를 사회 발전의 토대로 삼는 것이 정치라면 타협은 정치가 가야 할 최소한의 길이다.
모르겠다. 그가 '야합'과 '타협'을 구분하지 못해 새해 벽두부터 국민에게 혼란과 실망을 가져다 줬는지도. 타협을 그토록 강조해왔던 '원칙'에 반함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무지'다. 그렇게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논란만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 80분의 모노드라마는 그의 독선 이미지만을 강화했다. 언론은 꼭두각시 인형마냥 청와대의 요구에 순응하며 조연 역할에 충실했다. 노무현을 향하던 조롱은, 이명박에 데였던 불통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김무성마저 대통령의 불통을 문제 삼고 나섰다. "틀린 얘기라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논지다. 청와대 성벽에 갇혀 여왕 노릇 하지 말고 제발 '들어라'는 것이다. 이는 곧 독설도 품을 줄 아는 지도자에 대한 소망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저자 존 그레이는 이 책을 통해 남녀의 근원적 차이를 설명하고, 다름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를 강조했다. 특히 그는 남자를 향해 여자의 말을 들어줄 것을 강권한다. 문제 규정이나 해결이 아닌 입장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갈등은 극복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치 2014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모습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듯하다.
대통령은 브라운관 너머 국민이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백성을 재단하는 절대군주의 모습에서 폭군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회한을 용서와 타협을 통해 대탕평으로 승화시킨 정조가 그리운 오늘이다.
김기성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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