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한반도 새 시대'를 열어 나가기 위한 대북정책 방향을 밝혔습니다. 현재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간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단계적으로 복원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군 장병이 남북 군사통신선 시험 통화를 하고 있다. 2021년 7월27일 촬영. (국방부 제공, 뉴시스 사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월19일 이 합의 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정부 내에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선제적으로 저는 9·19 군사합의가 복원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9·19 군사합의는 남북이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기로 한 합의죠. 7년 전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국방부 장관이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우발적 사고가 전면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남북 접경 완충 지역에서 포병 사격훈련을 자제하는 내용 등이 돋보였죠. 이 합의가 살아 있는 동안 북한의 대남 도발이 확 줄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9·19 군사합의의 정신과 효과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이 이런저런 갈등을 빚던 와중에 9·19 군사합의는 깨지고 말았죠. 국방부 차원에서는 북한 정책과 군비 통제를 담당하는 국으로 대북정책관실이, 그 국 안에 북한정책과가 있었는데요. 해당 국과 과를 모두 없애고 북한 정책을 다루던 정책 장교들을 야전 부대로 하방해버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고 선언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합의 복원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통일부가 아니라 국방부 소관입니다. 국방부에서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 방안이라도 내놓을 때가 됐는데요. 북한 정책을 담당하던 부서를 윤석열정부가 없앴기에, 관련 업무가 늦어지는 건 아닌가 궁금합니다.
2018년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9·19 군사합의를 맺었던 국방 분야 주역들이 지난 9월19일 강원도 고성 DMZ 박물관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사진=민주당 속초인제고성양양 지역위원회 제공)
이런 상황에서 7년 전 9·19 군사합의를 추진했던 국방 분야 주역들이 지난 9월19일 강원도 고성 DMZ박물관에 모여 '9·19 군사합의 복원 방안'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 안보실의 이상철 차장, 국방부 김도균 대북정책관(나중에 수도방위사령관을 함), 조용근 북한정책과장(나중에 대북정책관으로 승진. 예비역 육군 준장)이 참여했고 필자도 토론자를 맡았습니다.
9·19 군사합의는 남과 북 쌍방 합의입니다. 쌍방이 합의하지 않으면 모든 내용을 되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선제적으로 할 수 있는 조처들이 있다고 조용근 전 대북정책관이 발제를 통해 제시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군사통신선을 되살리자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남북 군사통신선은 서해 우발적 충돌 방지용 3회선, 경의선 남북관리구역 통행용 3회선, 동해선 남북관리구역 통행용 3회선 등 9개 회선이 있는데 모두 끊어졌습니다. 판문점 안에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 유선 전화 1개 회선만 살아 있죠. 조 전 대북정책관은 "TV 방송이나 외교 채널, 유엔사-북한군 유선전화 등 여러 경로를 활용해 통신선을 되살리자고 꾸준히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사통신선은 중요합니다. 과거 서해 해상에서 북한군 함정이 경계선을 넘어 내려왔습니다. 그때 남북 군 당국자들이 전화로 통화해 고의가 아닌 실수임을 확인하고 군사적 충돌을 피한 예가 있죠.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나토와 러시아는 군사 핫라인을 열어놓고 매일 시험 통화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센카쿠 열도(중국 이름 댜오위다오)를 놓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중국과 일본도 군사 핫라인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은 남북 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적대적 관계일수록 우발적 충돌이 전면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두어야 합니다. 군사통신선을 되살리자고 우리 정부가 먼저 요구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남북 접경지역에서 군사행동을 먼저 조절하고 북한에도 상응한 조처를 요구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서해 접경 해상에서 남북한이 자주포와 해안포로 해상 사격 훈련을 하고 있는데요. 9·19 군사합의에서 하지 않기로 했던 내용이죠. 우리 해병대가 현재 주둔한 섬에서 내륙으로 자주포를 옮겨 사격 훈련을 하면 될 것이라고 조 전 정책관은 설명했습니다. 자주포는 엔진과 바퀴가 있습니다. 이동하면서 쏘라는 무기입니다. 해병대는 붙박이 경계 부대가 아니라 기동작전 부대이죠. 기동력도 좋아지겠네요.
셋째, 국방부에 대북정책관실과 북한정책과 조직을 복원해야 하겠습니다. 이 부서가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한 신뢰 구축을 목표로 9·19 군사합의를 추진했죠. 이런 업무를 해본 사람이 국방부와 합참에 전혀 없다 보니,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 복원을 천명한 지 한 달이 넘도록 국방부가 실행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다고 조 전 정책관은 분석했습니다.
남북 관계를 다른 영역에서 먼저 개선하고, 9·19 군사합의는 나중에 손질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한 이 합의를 되살릴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잘못된 생각입니다. 접경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고 우리 안보를 튼튼히 하는, 선제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박창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과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생태계에서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언론의 언어 왜곡>과 같은 책을 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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