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정부의 금융당국 개편안이 본회의 표결을 하루 앞두고 전격 철회됐습니다. 금융당국 개편안을 두고 그간 관련 기관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는 데다 실효성 논란까지 꾸준히 제기됐는데요. 일각에선 '예고된 혼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자 모피아(경제 관료 카르텔) 개혁의 상징으로 꼽힌 금융당국 개편은 사실상 좌초된 셈입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항의하는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국회법을 들어 해결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
25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습니다. 민생 법안 처리 후 여덟 번째로 상정된 안건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24시간 뒤인 26일 처리될 방침입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논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을 (민주당이) 강압적으로 통과시키려 하는 부분에 대해 함께할 수 없다"며 "그 부분에 대해 반대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총의가 모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검찰 개혁과 모피아(경제관료 개혁)이 골자입니다. 구체적으로 △검찰청 폐지 △공소청 설치 △기획재정부 예산 기능 분리 및 기획예산처 신설 △기재부를 재정경제부로 명칭 변경 △기후환경에너지부 신설 등이 담겼습니다.
다만 이날 오전 당정이 금융당국 개편은 철회하기로 결정하며 '반쪽짜리'가 됐습니다. 앞서 지난 9일 발표된 정부 조직개편안에는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을 재경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아울러 금융위를 금융감독 기능만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개편하고 금융감독원의 소비자 보호 기능을 떼어내 금융소비자원을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처리 예정일을 하루 앞둔 급한 백지화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재명 대통령의 모피아(경제관료 카르텔) 개혁에 흠집이 났습니다. 기재부와 금융당국 조직개편은 이 대통령 대선 공약입니다. 당선 직후 국정기획위원회가 개편의 청사진을 그렸고 이후 당정 합의를 거쳐 최종안이 발표됐습니다.
당정은 금융 관련 정부 조직을 6개월 이상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당초 민주당은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을 처리하면서 금감위 설치법 등 연계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방침이었습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최소 180일간 상임위원회에 묶이게 됩니다. 이 경우 조직개편이 2024년 4월까지 밀릴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등 후속 법안을 논의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국민의힘 소속인데요. 더욱 빠른 처리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국회에서 정부조직법 관련 비공개 고위 당정대 회의를 마치고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내부 반발에 실효성 논란까지
예고된 혼선입니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달 13일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한 뒤부터 금융위와 금감원 내부에선 혼란이 감지됐습니다. 금융위는 금감위에 남지 못한 인원이 재경부가 있는 세종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민간 조직인 금감원의 경우 공공기관으로 지정될 경우 기존 부처와 임금 차이 문제 등이 예견됐습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지난 18일 장외집회를 열고 "이번 개편안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졸속 정책"이라며 규탄했습니다. 금감원 노조가 야외 집회에 나선 건 지난 2008년 금융감독기구 개정 반대 집회 이후 17년 만입니다. 지난 24일엔 국회 앞에서 야간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실효성 문제도 있습니다. 금소원의 경우 소비자 보호 강화 취지와 달리 실제 효과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미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가 있고, 금융위가 분쟁조정 기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복 기구 설립이 오히려 효율성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기존 금융당국 개편안은 금융사에 대한 과잉 규제 우려도 낳았습니다. 금소원에도 검사·제재 권한이 생긴다면 금융사는 같은 사안을 두고 금감위와 금소원 양쪽으로부터 규제받게 됩니다. 신설된 두 기관이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과도한 제재나 불필요한 중복 조치를 벌일 가능성도 지울 수 없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향후 개편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긴급 고위 당정대 회의 이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개편 전면 철회 여부에 대한 질문에 "거기까지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며 "추후 어떻게 진행할지는 고민해야 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에서 현재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누구 입김이 세냐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는 것 같다"며 "금감원에선 반기는 분위기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반응이다. 조직개편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자구책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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