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검사로 척수손상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Gettyimagebank)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피는 생명”이라는 표현이 성경에 있지만, 우리의 피 속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것일까요. 병원에서 매일 채취하는 일상적 혈액검사(routine blood test)가 척수손상 환자의 생사와 회복 정도를 초기에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캐나다 워털루대(University of Waterloo) 연구진은 지난 7월22일 네이처(Nature) 저널인 <NPJ 디지털 의학(NPJ Digital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초기 혈액검사 데이터로 손상 중증도와 사망 위험을 조기에 판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 척수손상 환자는 2019년 기준 2000만명이 넘고 매년 93만명이 새로 발생합니다(세계보건기구 WHO). 이들 중 상당수는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신경학적 반응이 불확실해 정확한 초기 진단이 어렵다는 것이 의료계의 입장입니다. 연구 책임자인 아벨 토레스 에스핀(Abel Torres Espín) 교수는 “혈액검사만으로 사망 위험과 손상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의료진이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고 병상을 배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600명 환자·수백만 데이터 포인트로 패턴 학습
연구진은 미국 병원에서 수집한 2600여명 환자의 입원 초기 3주간 혈액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머신러닝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전해질 수치, 면역세포 분포 등 수백만 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시계열로 분석해 숨은 패턴을 찾아낸 결과, 입원 후 1~3일 이내에 손상 중증도와 사망 위험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고 시간이 경과되고 혈액검사 횟수가 늘수록 예측 정확도가 더 높아졌습니다.
공동연구자인 마르지에 무사비 리지(Marzieh Mussavi Rizi) 박사는 “단일 시점의 바이오마커보다 여러 지표의 시간적 변화(trajectory)가 훨씬 강력한 예측력을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MRI·유전자 검사보다 저렴·보편적…의료 형평성 제고 기대
MRI나 체액 오믹스(omics) 기반 바이오마커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장비와 비용 때문에 모든 병원이 즉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일상 혈액검사는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이미 시행하고 있어 저비용·고접근성이라는 강점을 갖습니다.
토레스 에스핀 교수는 “이 모델은 초기 신경학적 검사를 대신하거나 보완해, 척수손상뿐 아니라 다른 중증 외상에서도 조기 중증도 예측과 치료 전략 결정에 혁신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임상·정책 파급 효과: ‘데이터로 치료 우선순위’ 시대
이번 연구가 의료 현장에 적용되면 중환자실 자원 배분, 수술·재활 계획 수립, 장기 예후 상담 등 임상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응급 이송 직후 치료 우선순위 결정이나 중환자실 병상·재활센터 배치, 환자·가족에게 조기 예후 설명 등 여러 측면에서 데이터 기반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의료 형평성을 높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워털루대 연구진은 “AI 기반 혈액 데이터 모델이 전 세계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형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라며 “조기 진단과 맞춤 치료의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워털루대 연구는 ‘데이터 의학’을 활용하여 혈액검사와 AI의 결합이 척수손상 예후 예측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치료와 자원 배분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중증 외상 의료의 어려움을 덜 게 될 것입니다.
DOI: 10.1038/s41746-025-01782-0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