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TF 꾸린 산업부…체코 노예계약 '반대 의견' 나온 한전 이사회 조사
산업부, 체코 원전 논란 후 대통령실 지시로 한전·한수원 조사 TF 꾸려
한전 이사회, 웨스팅하우스 합의문 '반대 의견'에도 합의문 통과시켜
"이사회 당시 격렬한 논의 있었다" 제보 이어져…한전, 회의록 비공개
권향엽 의원 "한전, 국회 '자료 요구' 묵살…당시 상황 투명하게 밝혀야"
2025-09-24 18:08:50 2025-09-24 18:54:34
[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산업통상자원부가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 과정에서 불거진 '노예계약' 논란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조사를 하고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TF는 한국전력 이사회를 집중 조사했습니다. 원전업계와 한전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당시 한전 이사회에선 체코로 원전을 수출할 때 미국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불공정 협의를 진행한 데 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원전 수출에 관한 분명한 반대 의견까지 존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은 국회 상임위원회에도 이사회 회의록 등 구체적인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서 진상 파악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24일 <뉴스토마토>가 권향엽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부는 한전과 한수원 이사회를 대상으로 체코 원전 노예계약 논란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19일 윤석열정부가 체코 원전 사업을 수주하려고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불리한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은 '계약 과정이 법과 규정에 근거하고 있는지 원칙과 절차가 준수됐는지' 등 진상 파악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 2024년 9월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서 축사 뒤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른바 '노예계약'으로 비화된, 웨스팅하우스와 체결한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에는 △한수원·한전 등이 체코로 원전을 수출할 때 1기당 6억5000만달러(약 9000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구매 계약을 웨스팅하우스와 체결 △1기당 1억7500만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 사용료 지불 등의 조항이 들어간 걸로 알려졌습니다. 
 
원전업계는 이런 합의가 불공정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기술 사용료를 내는 것에 대해선 일부 찬성 의견도 있지만, 한국이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모든 차세대 원전을 독자 수출할 때도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하는 조항엔 비판 일색입니다. 특히 한국이 원전 수출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역을 △동남아시아(필리핀·베트남) △남아프리카 △남미(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로 한정하고, 기타 국가에 원전을 수출할 땐 웨스팅하우스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모든 협정의 유효기간이 50년이 아니라 사실상 무기한인 것에 대해선 "웨스팅하우스에 한국 원전 수출의 목줄을 쥐어준 셈"이라는 주장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한전 이사회에선 해당 안건이 통과됐습니다. 한전에 따르면, 이사회에서 웨스팅하우스 합의안을 논의한 건 지난해 11월20일과 올해 1월14일입니다. 한수원·한전·웨스팅하우스가 지식재산권 분쟁 절차를 중단하고 합의문을 체결한 건 1월16일입니다. 즉, 합의문 체결 2일 전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이 의결된 겁니다. 
 
2023년 10월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들이 참석했다. 사진 왼쪽부터 왼쪽부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 정동희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 (사진=뉴시스)
 
하지만 원전 업계에 따르면, 당시 한전 이사회에서 정상적으로 합의문이 통과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내부적으로 반대 이견이 제기됐고 격렬한 논의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한전 내부 관계자도 "당시 이사회에서는 합의문에 관해 반대 의견이 있었다. 내부적으로 굉장히 심하게 논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면서 "애초 회사 내 이사회를 통해서는 '재협상을 하고 검토해라' 이 정도 권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 지시 후 산업부가 TF를 꾸려 조사에 나선 것도 이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한전·한수원 주무 부처인 산업부가 이사회에서의 반대 의견 정황을 인지, 당시 한전 이사회 상황과 내용은 물론 합의문이 통과된 절차까지 조사한 겁니다. 
 
현재 한전은 회의록과 이사회 찬성·반대 이사 명단 공개 요청에 관해 '영업상 비밀'이라고 주장,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본지가 권향엽 의원실을 통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재부는 한전이 정보공개법 제9조(비공개 대상 정보) 1항 7호에 따라 영업상 비밀로 공시 예외를 요청하자 이를 수용했습니다. 한전이 기재부에 공시 예외를 요청한 공문에는 '제 14차 회의록 및 개별 이사 활동 내용(찬·반 여부)'에 대해 '법인 등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법인 등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 예외해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지난달 22일 한전·한수원에 '웨스팅하우스 지재권 관련 이사회 회의록 및 표결 내역'을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영업상 비밀 침해라며 비공개 통지를 받았습니다. 
 
권 의원은 "한전 이사회에서 이면 합의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제보가 이어지는데, 한전은 이사회 회의록은 물론 이사들의 찬반 여부에 대해서도 공시 예외를 요청하고, 국회 자료 요구도 묵살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이라도 확보하려면 이사회 이사들의 찬반 여부만큼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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