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내년 초로 예상되는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이 우리 정부의 최대 불확실성으로 떠올랐습니다. 1·2심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최종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게 되면, 상호관세는 광범위한 품목 관세로 대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한국 산업 전반이 다시 관세 리스크에 노출되고, 대미 투자를 포함한 기존 합의안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최종심 장담 못 해"…다시 흔들리는 통상 질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7일(이하 현지시간) <NBC 뉴스> 인터뷰에서 대법원 상고심이 예정된 '관세 재판'과 관련해 "패소할 경우 약 절반의 관세를 환급해야 하고, 이는 재무부에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베센트 장관은 "대법원에서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길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승소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패소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은 발언입니다.
그는 '패소할 경우 환급해 줄 것인가'라는 사회자 질문에 답변을 피하다가, 거듭된 질문 끝에 "법원이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환급 제공은) 준비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따르면 8월25일 기준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부과한 관세 징수액은 총 658억달러(약 91조원)에 달합니다. 이는 미국의 한 달치 무역적자와 맞먹는 규모로, 환급 판결이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내세웠던 관세정책은 단숨에 막대한 재정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 워싱턴 D.C. 연방순회항소법원은 "IEEPA이 수입을 '규제'할 권한은 대통령에게 부여하지만, 관세 부과 권한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안보·외교·경제와 관련한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의회 승인 없이도 다양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합니다.
주로 적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활용돼왔고, 이를 관세 부과 근거로 사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그는 무역 불균형, 미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 국경을 통한 마약 유입 등을 '국가비상사태'로 정의하며 상호관세·펜타닐 관세를 부과해왔습니다. 세율을 높여 수입을 억제하는 것도 규제의 한 형태라는 주장입니다.
결국 항소심 판결은 '관세 부과'와 '대외 통상 규제' 권한은 의회에 속한다는 헌법 원칙을 재확인한 것입니다. 항소법원은 1심 국제무역법원(USCIT)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여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관세는 10월14일까지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판결에 불복해 연방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 상고심을 신속심리 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입니다. 대법원이 신속심리를 받아들여, 내년 상반기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현행 관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법원 보수 우위에도…핵심은 '중대한 질문 원칙'
현재 미 대법원은 9명 중 6명이 공화당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 판사이며, 이 가운데 3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민자 추방부터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허용까지, 대법원에서 잇따라 승소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에 낙관적이지만, 관세 문제는 예측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포괄적 법률 조항을 근거로 중대한 정책을 시행하려 할 때,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없으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중대한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 대법원에 확립돼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원칙은 현직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가 2022년 오바마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무효화하면서 처음 공식 천명한 것으로, 이번 판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3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 양자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232·301·338조…트럼프 행정부의 '다른 길'
베센트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는 232조(안보 관세), 301조(보복 관세), 338조(보복적 무역 제재) 등 다양한 권한이 있다"며 "즉 일본과 진행한 모든 조치는 유효하다. 유럽과의 조치도 유지된다"고도 언급했습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대법원에서까지 패소한다면, 이들 법률 근거를 활용해 상호관세를 광범위한 품목관세로 대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경우 한국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를 중심으로 대응 라인을 총동원해, 개별 품목 단위로 미국과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상호관세가 사라져도, 기존 합의안은 지켜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현지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대법원에서 패소할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더 높게 보고 있다"며 "상소법원은 절차적 문제를 살피지만, 대법원에선 3권분립의 헌법 원칙이 더 중요시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양 교수는 "한·미 통상 협상에서 우리가 법적으로 약속한 건 하나도 없지만, 트럼프가 '협정을 맺었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 위험성은 있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에겐 악몽 같은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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