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내 은행 점포가 꾸준히 줄어든 가운데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을 위주로 점포 통폐합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공동으로 점포 폐쇄 관련 자율 규제를 마련했지만, 수익 극대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점포 폐쇄 대안으로 정치권과 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은행 대리업 제도 역시 점포 폐쇄의 명분을 키워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강북·도봉 점포 수 10년 새 절반 '뚝'
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서울 시내 점포(지점·출장소·센터 등 포함) 수가 고령자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을 위주로 급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강북구 내 4대 은행 점포 수는 2015년 25개에서 2024년 13개로 10년 사이 48.0% 줄었습니다. 고령자 인구 비율이 두번째로 높은 도봉구는 같은 기간 점포 수가 28개에서 13개로 53.5% 축소됐습니다.
반면 고령자 인구 비율이 최하위권에 속하는 강남구에서는 4대 은행 점포 수가 2014년 235개에서 2015년 179개로 23.8% 줄어드는 데 그쳤습니다. 강북구와 강남구의 점포 수 격차는 10년새 9.4배에서 13.7배로 더 벌어졌습니다. 고령자 등 디지털 취약계층이 많은 곳일수록 금융 접근성이 더 악화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 의원은 "은행들은 인터넷·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라 직접 은행 창구를 찾는 고령층 인구가 많은 곳에서 훨씬 높은 비율로 점포들을 없애왔다"며 "서민층, 고령층이 많은 지역보다 고액 자산가들이 맣은 지역 중심으로 수익 추구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간 은행들은 인터넷뱅킹·모바일뱅킹 등 디지털금융 전환으로 은행 점포 감축은 거스를 수 없다고 설명해왔습니다. 국내은행 전체 점포 수를 보면 2015년 7278개에서 2024년 5645개로 22.4%(1633개) 감소했습니다. 점포 형태로 보면 이 기간 지점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출장소는 2023년부터 늘고 있어 지점이 출장소 형태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를 마련해 자율 규제를 강화했지만, 강세성이 없는 가장 낮은 수준의 규제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 의원은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 개정안에도 은행들의 점포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며 "돈 안 되는 점포들을 폐쇄해서 수익성을 맛본 은행들의 자율 규제에 맡겨두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점포 폐쇄 관련 공동 절차(가이드라인)를 보면 은행들은 점포 폐쇄를 결정하기 전 사전 의견 수렴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사전영향평가를 실시해야 합니다. 점포 폐쇄할 때는 창구 대체율이 높은 대체 점포를 마련해야 하고, 점포 폐쇄 이후에도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후 평가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성격의 공동 절차를 만들었지만 은행권 자체 규약이라서 법적 강제성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양날의 검' 은행 대리업 추진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 대안으로 추진하고 있는 '은행 대리업' 도입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적지 않습니다. 은행 대리업은 예·적금과 대출, 이체 등 은행 고유 업무를 제3자가 대리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은행 대리업자는 고객 상담, 거래 신청서 접수, 계약 체결 등 대고객 접점 업무 대신 수행하고 심사와 승인 등 의사결정이 필요한 업무는 은행 직접 수행하는 구조입니다. 은행 또는 은행이 최대주주인 법인, 지역별 영업망을 보유한 우체국, 저축은행 등이 은행 대리업을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법상 은행 고유 업무는 제3자 위탁이 제한돼 있어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은행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당국은 은행법 개정을 추진하되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 시범운영을 통해 은행 대리업을 시행한다는 방침입니다.
은행 대리업 도입이 은행의 수익 극대화 전략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고객 민원이 많거나 창구에서 소비자와 직접 대면해 상품 계약을 체결하는 업무를 대리업자에게 넘기고, 은행 본점과 핵심 점포는 수익성 높은 업무 위주로 맡을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한 의원은 "그간 주민들의 반대 여론을 살피던 은행들이 이제부터는 마음 놓고 수익이 낮은 점포를 폐쇄해도 좋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소비자 보호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은행업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리업자들이 수수료 높은 상품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은행 간 또는 대리업자 간 경쟁 과열이 우려되는데요. 은행 대리업자가 일으킨 금융사고나 불완전판매로 인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야 의원은 은행 대리업자에 대한 내부통제 감독과 금융사고 책임 의무를 업무 위탁자인 은행에 지우겠다는 방침입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점포 폐쇄의 대안 마련에 대해 "취지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방법론에서 자율 규제로 할지 강제로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은 은행 점포 폐쇄의 대안으로 '은행 대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점포 폐쇄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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