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진정한 친한파 스미야 미키오 교수
2025-09-04 06:00:00 2025-09-04 06:00:00
2025년은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요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려면 정부나 재계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 간의 교류와 상호 이해가 확대되어야 한다. 물론 과거사 문제는 정리해야 하지만 긍정적인 기억을 되살려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일도 중요하다.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에도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한 세계의 뜻있는 인사가 많았다. 일본의 경제학자인 스미야 미키오(隅谷三喜男, 1916~2003)는 한국의 민주 시민들이 기억해야 할 인사이다. 그는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노동경제학자이며 실천적인 기독교 지식인으로 일본과 아시아의 화해와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다. 도쿄여자대학 학장 시절에는 일본을 거점으로 민주화운동을 하는 철학자 지명관을 정식 교수로 채용하는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지 교수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대에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장기 연재하며 일신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정권의 폭압을 외부 세계에 알린 지사였다.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한국의 지식인 세대는 스미야를 『한국의 경제』의 저자로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이 1976년에 나오자 즉시 한국 정부는 금서로 지정하고 스미야도 공산주의자로 지목해 입국을 금지했다. 『한국의 경제』는 박 정권이 과시하는 경제성장의 이면에서 누적되고 있는 각종 문제점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자료를 압축적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소수 대기업에 대한 외자 도입의 특혜와 정경유착, 외채의 증가, 소득 격차의 확대, 수출산업과 내수산업의 차별 대우, 민중의 생활난 등의 쟁점에 대한 스미야의 실증적 고찰은 정보 부족에 시달리는 국내 민주화운동 진영의 갈증을 상당히 풀어주었다. 이 책은 대량으로 복제되어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북한과도 스미야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일본의 기독교계는 북한에 ‘조그련’(조선그리스도교련맹)이라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을 통해 교류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1987년 연초에 북한 대외문화연락협회는 일본 기독교 교단의 나카지마 마사아키(中島正昭) 총간사, 일본기독교협의회의 마에지마 무네토시(前島宗甫) 총간사와 함께 스미야를 초청했다. 이들은 5월6일부터 일주일 동안 북한을 방문하여 요인들과 회담하고 ‘조그련’의 간부, 신도와 교류했다. 스미야는 북한에 교회는 없었지만 평균 20명 정도의 신도가 모이는 집회는 약 500개 정도 있었으므로 신도가 약 1만명 정도라고 추산했다. 스미야 일행은 평양에서 주일날 열리는 기독교 집회에 참석했다. 이를 계기로 1989년 가을에는 일본 기독교계 인사들이 ‘조그련’ 대표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를 일본으로 초대하여 같이 만나게 하는 모임이 이루어졌다. 스미야는 북한의 초청을 받아 1999년 10월 중순에도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숙소에서 밤에 정전이 되는 것을 보고 놀랐으며, 서적을 보내겠다는 제의를 하자 사회과학자협회 관계자들이 크게 환영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 살펴본 스미야의 활동은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지식인의 사례이다. 이러한 활동이 거둔 성과는 물론 중요하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사회는 스미야와 같은 진정성을 가진 친한 인사를 기억하고 이들의 뜻이 계승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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