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임금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고,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같은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는데,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와 용역업체가 우리를 배제한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공항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6일 공항공사 청사 밖에서 일주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기숙(62)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 조합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습니다. 인천공항 방역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 22명은 지난 7월31일부로 세스코가 새 용역업체로 선정되면서 하루아침에 실직 위기에 몰렸습니다.
현재 9명이 청사 내부에서 24시간 노숙 농성을, 13명이 출퇴근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사 안팎의 조합원들은 서로 만날 수도, 제대로 소통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합니다. 공항공사가 청사 내 업무외 출입을 엄격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충격적인 건 공항공사가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시설 이용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청사 밖 농성자들은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어 도보 5분 거리의 다른 건물까지 가야 합니다. 청사 안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도 화장실을 제외한 카페, 편의점 등 모든 편의시설 이용이 금지됐습니다.
이날 인터뷰 중엔 농성 중이던 한 조합원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쓰러져 119 구급차로 병원에 긴급 이송됐습니다. 이 조합원은 공항 내부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다 건강이 악화됐다고 합니다. 그는 지난달 31일 이후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공항 밖을 나왔습니다.
8월6일 인천공항공사 청사 앞에서 농성중이던 조합원이 쓰러져 119 구급대를 이용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뉴스토마토)
'3000명 대 22명'...규모 논리에 밀린 고용승계
청사 밖에서 만난 김기숙 조합원은 고용승계 거부의 부당함을 강조했습니다. "세스코는 3000명이 넘는 직원이 있다고 한다. 우리 22명을 받아들이면, 기존 취업 규칙 등을 수정해야 하니 그런 것(고용을 못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입찰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 용역업체로 선정된 세스코는 내부 취업 규칙상 정년이 만 60세입니다. 반면 기존 용역업체인 명문코리아는 올해 초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통해 정년을 65세로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이 단협은 체결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세스코는 이들을 고용승계하면 자신들의 취업 규칙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명문코리아의 60세 이상 노동자에 대한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겁니다.
함께 농성 중인 이종민(35) 파트장 역시 "60세 이상 고령자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했다고 들었다. 2025년 지금 시대에 이런 차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은 공항공사 자회사들의 정년이 65세라는 점을 강조, 세스코의 기준이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김씨는 "공항 내 다른 자회사들 모두 정년이 65세다. 올해 만 62세인 나는 아직 노령연금도 못 받는 나이인데, 고령자라며 고용승계에서 배제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8월6일 인천공항공사 청사 앞에서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조합원 가운데 절반은 청사 밖에서 절반은 청사 안에서 농성 중이다. 이들은 전화로만 소통이 가능하다. (사진=뉴스토마토)
'코로나19' 방역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실직자로
청사 안에서 농성 중인 안순자(48) 조합원과는 전화로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전했습니다. 안씨는 "여름에는 방진복 입고 (더워서) 정말 쓰러질 줄 알았다. 한 곳 (방역이) 끝나면 또 다른 곳에서 클레임이 들어와서 방역복 입고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안씨와 함께 청사 내부에서 농성 중인 고윤수(45) 총괄팀장은 "인천공항이 100만평 규모다. 22명이 모든 방역업무를 담당할 만큼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며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우리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었고 그 체계를 통해 코로나19 대유행을 극복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현재 공항 안엔 3000개가 넘는 쥐 트랩을 설치해 매일 관리하고, 빈대 이슈가 터졌을 때도 세스코는 빈대 탐지견, 기계 등을 통한 박멸을 주장했지만 결국 사람이 나서 100% 박멸을 했다. 이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8월6일 인천공항청사 내에서 농성하고 있는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 조합원들. (사진=뉴스토마토)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이번 고용승계 사태에 대한 공항공사의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고 팀장은 "고용승계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기업이니까 걱정이 없었다"며 "고용승계를 안 하겠다는 말도 없었고, 면접 의사도 없었다. 자신들만 전문가라고 주장하며 우리를 배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파트장 역시 "일하다 보니 계약 만료 시점을 알게 됐지만, 짤린다는 걱정은 없었다. 그동안 (고용승계된) 선례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니 황당하다"고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도 철저히 소외됐다는 점입니다. 고 팀장은 "문재인정부 때부터 순차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는데, 방역 업무는 정규직 전환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며 "협력사 수백 개 중에서 우리만 면접 기회가 없었다. 모두 배제시켜놨다"고 주장했습니다.
노동자들 "끝까지 싸울 것"…공항공사 책임 부각
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김씨는 "기왕 벌어진 일,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공항공사다. 우리는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안 조합원은 "하루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며 "공항공사는 '할 만큼 했다'고 하는데, 우리한테는 보이는 게 없다. 고용승계는커녕 노동자를 이렇게 대우하고 있는데 뭘 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습니다. 공항공사가 청사 밖으로 나간 노동자들의 청사 출입을 다 막고, 노조와도 전혀 대화가 없기 때문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고 팀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근무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부당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몇 년 동안 업무하던 공간이 지금 마비 상태인데, 책임도 못 지고 나와 있는 게 불편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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