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현철 기자]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방역 업무를 맡아온 용역 노동자 22명이 고용승계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22명 가운데 여성은 8명, 60대 이상은 5명입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공항공사)는 직접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승계 책임을 부인하고 있으나, 노동계는 "공항공사가 사실상 고용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 산하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이 지난 8월4일 인천공항 로비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용역업체 교체'로 23명 중 22명 배제...소장 1명만 고용승계
5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며, 이번 사태는 공항공사가 기존 용역업체인 '명문코리아'와의 계약을 종료하고, 2025년 8월1일부터 새로운 용역업체 '세스코'와 방역 업무 계약을 체결하면서 촉발됐습니다.
여객터미널 내 사무실과 화장실 등에서 일했던 기존 방역 노동자 23명은 대부분 수년간 근무한 숙련 인력입니다. 공항공사는 이번 계약에서 총 24명의 인력을 과업지시서에 명시했으나, 실제 명문코리아 소속으로 일하던 인원은 23명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1명은 현장지휘자(소장)로 지난 4일 세스코와 근로계약을 맺었습니다. ‘1년 이상 경력자’를 현장지휘자로 채용해야 한다는 과업지시서에 따라 세스코 측이 별도 계약을 의뢰했고, 그 요구를 수용한 겁니다.
한국노총 산하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의 주장을 종합하면, 세스코는 지난 7월29일 면접을 진행한 뒤 "고용승계는 어렵다"고 통보했고, 7월31일에는 공식적으로 승계 불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합원들은 고용승계가 거부된 다음 날인 8월1일부터 인천공항 로비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공항공사는 지난 4일 조합원 전원에게 출입증 정지 조치를 통보했습니다. 조합원들이 가진 출입증으로는 인천공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그러면서 공항공사는 조합원들이 '무단 침입과 불법 점거'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노조는 "사무 공간이 아닌 공공장소인 로비에서 진행된 정당한 항의 시위였다"며 "공항공사가 공공기관의 책무를 외면한 채, 반노동적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용역업체 사이에 벌어진 고용승계 문제지만, 공항공사가 승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를 방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방역 최전선에서 활동한 숙련 인력들
고용 배제 대상이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방역 최전선에서 일해온 숙련 인력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반복 업무를 수행하는 비숙련 인력이 아닌, 감염병 대응 경험이 풍부한 숙련 인력입니다. 특히 인천공항이 2022년 이후 원숭이두창(Monkeypox) 유입 차단을 포함한 감염병 대응 체계를 무리 없이 가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항공편 증가, 해외 유입 환자 발생 가능성 등 변수 속에서도 현장 경험이 축적된 노동자들이 공항 방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것입니다.
지난해 11월17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환승 라운지에서 관계자들이 빈대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임금과 노동조건이 개선된 직후 벌어진 이번 배제입니다. 앞서 노동자들은 2024년 12월 노조를 결성한 이후 첫 임금교섭을 통해 최저임금 수준이던 임금을 대폭 인상시켰습니다. 이를 반영해 공항공사도 세스코와 계약을 체결할 때 연간 용역 단가를 상향 조정했습니다. 실제로 명문코리아 당시 연간 계약금은 약 37억원이었으나 세스코와의 계약은 50억원에 이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공사와 세스코 측은 "항상 고용승계가 100%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반면 노조 측은 "과거 고용승계에서 누락된 경우는 대부분 저임금 등 열악한 조건에 따른 자발적 미승계였지만, 이번처럼 조건이 개선된 상황에서 일방적 배제는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우려 제기…"인천공항서 하청 고용은 부끄러운 일"
정치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을 운영하는 공항공사가 공항 방역을 책임지는 근로자들을 불안정한 하청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근로자들의 고용이 하루아침에 단절되지 않게 승계가 어려운 경우에도 최소한의 연착륙 기간을 보장하는 등 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세스코 측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22명 중 17명(80%)에 대해서는 고용승계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며 "나머지 5명은 66세로 정년을 초과했고 저희 취업 규칙에도 해당이 안 되기 때문에 고용승계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또 이어 "17명 중 12명은 인천공항에서 근무를 하고, 5명은 세스코의 다른 사업장에 재배치하는 걸로 제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용역 계약상 24명을 전문가로 배치해야 하는데, 일했던 분들은 소독 용역에 대한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인천공항 위생 소독 용역 고용승계 문제에 대하여 현재 계약자인 세스코와 한마음인천공항노조 측과 협의 진행 중"이라며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대한 고용승계를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습니다.
김현철 기자 scoop_pres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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