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창간6주년 기획: 상법이 바꾼판)③자본조달도 바뀐다…IB 자문 러시
조금조달, 분할결정 철회 움직임 뚜렷
자사주 소각 압박에 EB 등 활용해 회피
모호한 주주 충실의무, 배임죄 논란 커져
2025-07-24 06:00:00 2025-07-24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07월 23일 11:37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총 제도화', '최대주주 3%룰 확대' 등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기업 경영의 기본 원칙과 투자자와 기업 간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다. 변화의 방향은 소액주주 권익 강화이지만 그 여파는 산업 전반과 자본시장 전반에 깊이 스며들 전망이다. <IB토마토>는 창간 6주년을 맞아 상법 개정의 핵심 내용과 주요 쟁점을 짚어보고, 이에 따른 산업·시장·정책의 파급효과와 기업·정부·투자자의 역할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상법 개정으로 주주친화 정책 강화에 기업들이 분주한 가운데, 자본조달과 관련한 행보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문화되면서 인수·합병(M&A), 유상증자 등 지금까지 일반주주들의 반대에도 감행해왔던 의사결정을 늦추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잦아지는 추세다.
 
개정된 상법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전자주주총회 제도 법적 근거 마련 ▲상장사 사외이사 독립이사 변경 및 의무적인 선임 비율 상향 조정 ▲감사위원 선임과 해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 강화 등이다.
 
이 중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은 충실의무에 관한 제382조의3이다. 기존 조문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였지만,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로 수정됐다. 나아가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여야 한다”는 제2항이 새롭게 추가됐다.
 
(사진=한국거래소)
 
‘중복상장’ 눈치 보는 기업들…주주가치 '우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용어로 요약되는 문제들을 근절하기 위해 개정된 만큼,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일반주주 반대에도 강행해온 자금조달과 분할 결정을 철회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최근 사업구조 개편에 나선 SK그룹의 경우 연내 기업공개(IPO)에 도전할 계획이었던 SK엔무브의 상장을 취소했고, 그동안 중복상장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LS그룹도 계열사들의 무리한 IPO 대신 시장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앞서 LS그룹은 올해 파워솔루션과 이브이코리아, 이링크 등 비상장 계열사 상장을 예고한 바 있다.
 
상법 개정을 전후해 자발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가치를 높이는 기업들도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규모는 15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미 전년도 연간 소각액 13조9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번 상법 개정에는 자사주 조항이 직접 포함되진 않았다. 자사주 소각이 늘어난 것도 지난 정부에서부터 추진된 밸류업 프로그램 영향이 크다. 다만 새 정부가 향후 자사주 소각과 관련한 입법을 추가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규 자사주는 즉시 소각하고 기존 보유 자사주에 대해선 ‘6개월 이내 소각’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22일 국회에 제출했다.
 
이는 지난 15일 김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 내용 가운데 자사주 소각 기한을 ‘취득 후 3년 이하 범위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을 ‘6개월 이내’로 크게 단축한 것으로, 기업들이 받는 압박감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다면 공포 후 시행 전까지 6개월이라는 기간을 고려해 1년 이내에 자사주를 모두 소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사주 소각 늘었지만, EB 활용 회피
 
자사주 소각에 대한 압박이 늘어남에 따라 기업들은 이를 회피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전망이다. 특히 교환사채(EB)를 활용해 자사주 소각 문제와 자금조달을 동시에 해결하는 움직임이 잦아질 것이란 관측이다.
 
EB는 자사주를 직접 소각하지 않지만, 자사주를 교환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어 자사주 소각 회피를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나아가 EB는 주식 교환 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채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율을 제공하거나 사실상 이자율이 0%로 자금조달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할증률이 높은 경우 시가로 매도할 때보다 더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농심(004370)은 지난해 9월 약 30만주에 달하는 자사주를 대상으로 하는 EB를 발행한 바 있다. 교환가액은 15%의 할증률이 붙어 자사주를 매각했을 때보다 더 큰 규모로 자금조달이 가능했다. 농심은 최근 10년간 사채를 발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자사주 소각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최대주주 입장에서도 자사주 소각 대신 EB가 가진 장점이 분명하다. 우선 사전공시 대상에서 제외되며, 신주 발행이 아닌 기존 주식을 내주는 방식이어서 지분 희석 우려도 없다.
 
우호 세력에 EB를 발행할 경우, '백기사' 확보 수단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올해 5월 LS(006260)대한항공(003490)을 대상으로 650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한 것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호반그룹은 오너일가 지분율이 낮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180640)과 LS그룹 지주사인 LS 지분을 늘리면서 경영권을 넘보고 있다. 이에 LS는 한진그룹의 대한항공에 자사주를 사실상 넘겨주는 방식으로 EB를 활용한 것이다.
 
3일 국회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 (사진=연합뉴스)
 
'주주 충실의무' 어디까지?…경영상 배임죄 우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명문화되면서 이사회의 리스크 관리 필요성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번 상법 개정이 국내 자본시장의 글로벌 스탠다드화를 촉진하고 기업가치 제고에 도움된다는 평가지만, 경영권 방어 수단 미비나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처벌 가능성 등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리가 먼 제도적 허점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이사회 의사결정이 곧 법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법무법인 등 자문사에 대한 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상현 화우 자문그룹장은 “상법 개정과 관련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주로 자사주 처리 문제와 더불어 이사회 구성과 관련한 문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프로세스를 어떤 방향으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의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하느냐에 따라 향후 경영상 배임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해외 주요국들에 비해 경영상 배임죄에 대한 경영판단 원칙이 쉽게 인정되고 있지 않은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번 상법 개정으로 기업들이 받는 압박감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업경영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일반주주의 이익과 충돌할 경우, 재판부로부터 경영판단의 원칙에 대한 인정이 쉽지 않다”며 “미국을 비롯한 해외 주요국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를 기준으로 따지지만, 국내 판례를 보면 절차적인 문제와 별개로 결과적인 내용을 근거로 삼고 있어 이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막기 위한 정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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