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수정 기자] 무분별한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 발급이 카드사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대규모 환불 사태로 법정 리스크까지 번진 머지포인트 사태, 테라·루나 사태에 엮여 PLCC 제휴를 엎거나 사업을 중단한 사태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KB·하나카드 곤혹
금융지주 계열인 KB국민카드와 하나카드 등 굴지의 카드사도 PLCC 제휴 업체로 인해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인 적이 있습니다. PLCC는 카드사가 특정 제휴사와 단독 계약을 맺고, 해당 제휴사 관련 혜택과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맞춤형 신용카드입니다.
KB국민카드는 2021년 6월 머지포인트 운영사 머지플러스와 PLCC 발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KB국민카드는 자사 간편결제사 KB페이와 연계해 머지포인트 정기구독 특화 혜택과 머지포인트 제휴 가맹점 추가 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었습니다.
머지포인트는 국내 2만여개 가맹점에서 무제한 20% 할인을 내세워 2030세대를 중심으로 고속 성장한 할인 플랫폼입니다. 그런데 전자금융업 등록 미이행으로 금융감독원 조사가 이뤄지자 당해 8월11일 돌연 서비스 중단을 공지하면서 대규모 환불 사태를 야기했습니다.
구매 금액의 90% 환불을 약속했지만 환불 지연과 혼란이 지속되면서 수많은 소비자들이 폰지사기(다단계 금융 사기) 의혹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사태를 지켜보던 KB국민카드가 PLCC 사업 추진을 잠정 보류시킨 사이, 피해자 150여명이 약 2억원대 민사(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법적 리스크로 확대되면서 PLCC 발급 협력도 최종 결렬됐습니다.
하나카드는 2020년 초 차이코퍼레이션(차이)과 '차이 하나카드'라는 PLCC를 출시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가맹점 혜택을 '부스트'라는 리워드(환급) 포인트 할인 혜택을 제공해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차이는 설립 1년 만인 2019년 6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간편결제 서비스 ‘차이페이’를 내놔 주목을 받은 핀테크 스타트업입니다. 2022년 5월 신현성 차이코퍼레이션 창업자가 공동 창업한 테라폼랩스(테라)의 코인 테라(UST)·루나(LUNA) 가격이 폭락해 위기를 맞았습니다. 신 전 대표가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경영상의 차질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현재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진행 중입니다.
결국 차이는 2023년 4월 차이페이 잠정 휴업을 선언하고 당해 6월 말 사업에서 철수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나카드의 차이 PLCC 협력도 종료 수순을 밟았습니다.
KB국민카드와 하나카드 사옥. (사진=각 사)
'비용 절감'에 PLCC 남발
카드사들이 리스크를 안고도 PLCC 출혈 경쟁을 펴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 절감입니다. 금리 인상기에 고금리로 자금조달 비용이 늘고, 장기화된 국내외 경기 침체로 연체율 관리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도 입지를 유지하면서 수익성 개선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PLCC 시초는 현대카드입니다. 2015년 12월 이마트와 손잡고 출시한 '이마트 e카드'를 출시한 바 있습니다. 국내 PLCC가 처음 등장한 이후 2020년대 들어서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PLCC 발급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3년 7월까지 국내 전체 PLCC 발급량은 733만8677장으로 집계됩니다.
카드사 권한이 큰 제휴카드와 달리 초기 상품 설계 단계부터 카드사와 제휴사가 함께 비용을 분담하며 주도권을 나눠 가집니다. 수익도 나눠야 하지만 고객 모집에 드는 마케팅 비용 및 신용카드 출시·운용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효율적입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한국신용학회장)는 지난 5월 '카드사의 비용 효율화와 신수종 사업전략' 세미나에서 국내 PLCC 시장을 주도한 현대카드를 지목하며 "PLCC를 통해 모집 비용을 23% 절감했고, 현재 전체 시장의 약 78%를 점유했다"고 진단했습니다.
또한 카드사는 제휴사 충성 고객을 흡수하면서 이탈을 방지하는 락인(Lock-in)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동 마케팅을 펼 수도 있어 MOU를 통한 긴밀한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운영됩니다.
다만 제휴사의 잘못까지 카드사가 떠안을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지적됩니다. 그럼에도 카드업계는 PLCC 경쟁을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PLCC 제휴 업체 쪽에 이슈가 발생하면 카드사가 같이 엮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면서도 "이를 감안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근에도 계속 발행하는 추세가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체리피커 몰린 중소형과 제휴 지양해야"
전문가들은 PLCC 제휴 업체 선정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서 교수는 "카드사 입장에선 (제휴사 리스크가) 부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휴 업체 선정을 잘 해야 한다"며 "중소형 업체들과 제휴해 특화된 유인책을 펴는 것은 좋지만, 업체가 얼마나 신뢰성 있는지 분석과 검토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상 카드사 PLCC 제휴 대상은 스타벅스, 대한항공 등 특정 소비 목적을 가진 고객이 몰린 대형사에 치중돼 있습니다. 반면 머지플러스, 차이 같은 스타트업은 충성 고객보다 보상만 챙기고 떠나는 ‘체리피커’가 몰려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 교수는 "할인 혜택이나 포인트 받으려고 들어온 체리피커들을 충성 고객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 "카드사들이 굳이 이런 업체들과 제휴를 맺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PLCC도 사업 파트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부실한 업체랑 제휴하면 오히려 카드사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용카드 이미지. (사진=연합뉴스)
신수정 기자 newcrystal@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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