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에 필자가 관찰한 것은 질문하는 지도자가 정부 조직을 이끌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문하는 대통령을 보면서 사회의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났다. 질문하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어떻게든 답을 찾고 그 답을 실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 정부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이 시점에서 유연한 실용주의 정치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자. 스탠포드 경영대의 짐 콜린스 교수는 18개의 초우량 기업들을 연구해 이들을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경영의 대원칙을 찾아냈다. 이들 기업은 A아니면 B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벗어나서 A와 B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을 지혜라고 보았다. 이분법적이 아니고 서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는 양면적 요소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윤 추구 아니면 사회적 봉사'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 추구 그리고 사회적 봉사'를 추구하라. 이런 식으로 조화시켜야 할 양면적 요소들을 나열해보자. '변화와 안정', '장기적 투자 그리고 단기적 수익', '명확한 비전과 방향 감각 그리고 운 좋게 잡은 성장 기회 활용', '과감한 추진 전략 그리고 점진적 추진 전략', '저비용 그리고 고품질' 등등. 이렇게 상충되는 양면 요소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둘 다 고려하는 양면경영이 지속적 성장의 비결이다.
이렇게 찾은 양면 경영을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짐 콜린스 교수가 발견한 이 원칙은 동양의 음양철학에서 나왔고 유교에서는 오랫동안 인생사의 지혜인 중용으로 알려졌다. 짐 콜린스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이라는 책으로 내놓았는데 그는 책의 곳곳에 동양철학의 음양 문양을 소개하고 있다. 전 정권은 양면을 고려하지 않고 한쪽으로만 기우는 경직된 정치로 망했다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지하는 국민과 반대하는 국민들, 그리고 이념과 현실 문제 해결의 양면 요소를 모두 고려했어야 했는데 한쪽으로 치우쳐 정치는 실종되었다. 그 결과 여당인데 야당처럼 행동하면서 정쟁에 휘말렸고 국가가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이분법적 사고로 망한 정권이었다.
그러면 양면적-중용적 사고가 어떻게 유연한 실용 정치를 이끌까? 동양의 음양 이론과 중용에 기반 한 이런 원칙은 서양인에게 상당히 낯선 것이다. 서양인이 이런 원칙을 접하면 처음에는 서로 모순되는 그런 접근법을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반문하기 쉽다. 서양의 논리학에서는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것(혹은 반대인 B)은 모순으로 취급하여 이런 원칙은 진리에 반하는 역설로 들리게 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음양은 대립되는 모순쌍이 아니고 상생하는 조화쌍인 것이다. A와 B를 모순쌍에서 조화쌍으로 만드는 것은 양자를 대립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조화의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하다. 모순을 의미하는 창과 방패는 둘이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과 방패가 서로 상생하는 것으로 관점을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전쟁에서 병사는 한 손에는 창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싸우게 된다. 그래서 창도 필요하고 방패도 필요하다. 그래서 창과 방패는 모순쌍이기 보다는 조화쌍이다. 지혜로운 병사는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창을 들고 싸우는 양손잡이이다. 양자가 모순이 안 되는 것은 시점과 상황을 분리했기 때문이다. 양손잡이 병사는 공격할 때는 창으로 방어할 때는 방패로 방어하게 된다.
<중용>에서는 음양 이론을 시중(時中)과 집기양단(執其兩端)이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한다. 시중은 시기와 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는 시중이 없다면 창과 방패는 조화쌍이 아니고 모순쌍이 되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동시에 밟으면 이들은 모순쌍이 된다, 그러나 상황과 시점에 맞게 분리해서 속력을 낼 때는 가속 페달을 밟고 속도를 줄여야할 때는 브레이크를 사용하게 되면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조화쌍이 된다. 집기양단은 양쪽 끝을 붙잡고 가운데서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집기양단은 양쪽 끝의 정 가운데 위치하라는 것이 아니고, 양쪽 끝에서 상황에 맞게 저울질하면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움직여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중과 집기양단의 중용은 유연한 사고를 이끈다. 동양인은 원래 음양이론과 중용에 익숙했지만 서양의 논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양면성을 잊어버리고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졌다.
새 정부는 전 정부에서 못한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G7회의에서 돌아온 뒤 가진 여야 오찬회에서 양당 대선 공약 중 공통적인 것을 함께 추진하자고 제의했다. 민주주의에서 여야는 모순쌍이 아니고 조화쌍이다. 협치는 국민을 통합하고 지지하는 한쪽 국민만 보는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킨다. 싸우지 않고 설득하며 협치 해야 실용 정치가 가능하다. 새 정부는 “변화와 안정”의 양면 정치를 펼 것으로 기대된다. 개혁할 것은 과감히 개혁해야 하지만 기존의 국가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은 영속성을 갖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검찰개혁이나 주주가치 제고(코스피 5000의 야심찬 목표)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하면서도 미래 성장 산업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민생경제 회복과 AI 3대 강국”으로 되어있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보다 양면적이어서 미래 성장도 소홀히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국가 재정은 재정의 경기 조절 기능과 재정건전성의 양면적 요소를 모두 고려해서 운영해야 한다. 전 정권들은 재정건전성에만 집착하여 소비를 심하게 위축시켜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는 세수 결함으로 재정건전성이 재정정책의 유일한 기준이 되었다. 자영업 폐업이 속출하면서 경제지표에 빨간 불이 들어온 지 오래였지만 재정건전성만 강조되었다. 새 정부에서 재정의 경기 조절 기능도 고려해, 늦었지만 민생경제 회복에 나섰으니 다행이다.
외교도 양면 외교를 복원해야 한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중립은 없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서 유연한 실용외교를 펼쳐야 한다. 지금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며 국제사회에서 패권국가로서 리더십을 상당히 잃어가는 과정에 있다. 중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인도, 호주, 일본 등은 관세정책 때문에 미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트럼프의 백악관 초청을 거부했다. 주변 국가들이 미국에 등을 돌리는 것은 사실 미국이 자초한 것이다. 미국과 다소 거리를 두면서 중국으로 몇 보 이동해야 한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응하기 위해서 한중일의 필요한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대일 관계는 전 정부처럼 일방적 양보에서 벗어나 과거사와 미래 협력을 양면으로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대미 관세 협상에서 한중일 협력을 고려하고, 한국과 일본의 위상이 역전된 점(포브스 발표 2025년 강대국 순위: 한국 6위, 일본 8위)을 고려해 문재인정부 때보다 협력하는 쪽으로 몇 보 나가야 한다. 양면을 고려하는 유연한 정치를 원칙 없는 정치로 오해할지 모른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원칙(이념)을 고수하면서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해 상황에 맞게 유연성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안정(常)과 변화(變)의 조화이다. 중용의 양면적 사고는 2500년 동안 인생사에서 성공하는 방법으로 검증되었다. 이런 원칙을 전쟁에 적용한 것이 <손자병법>이다. 손자병법은 8개의 조화쌍(예를 들면 안정(常)-변화(變), 정공-변칙, 속도-힘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상황에 맞게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경영과 정치라 해서 성공 비결이 다를 수는 없는 법이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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