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 '방위비'로 불똥…미 동맹국 '전전긍긍'
트럼프식 '방위비 협박'…나토에서 한국으로 번진다
2025-06-23 18:11:55 2025-06-23 18:11:55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우크라이나·가자지구에 이어 이란·이스라엘 전쟁까지.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이 3개로 늘면서 동맹국을 향한 '비용 전가' 압박이 한층 더 거세질 전망입니다. 중동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정작 중요한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한 미군 억지력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 목표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대폭 상향하기로 합의하면서 다음 타깃은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가 될 걸로 보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국 국방비도 GDP 5%"…현실화 땐 국방비 '70조 증가'
 
나토 회원국들은 정상회의 개막을 이틀 앞둔 22일(현지시간) 국방비 지출 목표를 2035년까지 GDP의 5% 수준으로 높이는 가이드라인에 합의했습니다. 다만 스페인은 이러한 내용의 공동성명 초안에는 외교적으로 합의하면서도, 5% 인상은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나토가 합의문을 정식 공개하지 않았지만, 스페인이 반대하는 데도 32개 회원국이 모두 찬성한 걸로 공동합의문이 도출된 건 지출 공약 문구를 "우리가(we) 약속한다"에서 "동맹국들이(allies) 약속한다"로 수정한 덕이라고 외교관들은 전했습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나토의 '핵심 군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스페인은 GDP의 2.1%만 지출하면 된다"며 "방위비를 5%로 올리려면 국가연금과 같은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하거나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산체스 총리의 이러한 입장은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을 야기할 위험이 있습니다. 앞서 지난 20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스페인을 콕 집어 "다른 나라가 내야 할 만큼 내야 한다"며 "스페인은 방위비 지출이 낮기로 악명 높다"고 했습니다.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 증액에 합의한 배경에는 러시아의 위협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협박'이 주효하게 작용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재임 시절부터 유럽 동맹국들이 자국 방위를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나토 탈퇴 가능성'을 거듭 강하게 시사했고, 최근에는 다른 회원국들이 분담금에 대해 조치하지 않을 경우,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할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러한 협박은 한국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향후 더 강하고 구체적인 형태로 진전될 여지가 큽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 5월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훨씬 더 중대한 (중국발) 위협에 직면해 있는 아시아 주요 동맹국이 나토 회원국보다 적게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언급했습니다. 
 
미 국방부의 션 파넬 대변인도 지난 1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특히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며 "그것은 GDP의 5%를 국방에 지출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올해 한국의 국방예산은 61조2469억원으로, GDP 대비 2.3% 수준입니다. 미국 요구대로라면, 단기간에 70조원 이상을 국방비로 추가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0%대 저성장 국면과 재정 여건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중을 따지면, 한국(2.6%)은 영국(2.3%), 독일(1.9%), 프랑스(2.1%) 등 나토 회원국뿐 아니라 일본(1.4%)보다도 높았습니다. 정작 미국도 GDP의 3.4%만을 국방비로 씁니다. 
  
18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주한미군 순환배치 여단 임무교대식에서 가 나란히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중 견제, 니들이 해"…트럼프의 '방위비 청구서'
 
결국 한국을 향해 북한 등의 주변 위협으로부터 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면서, 대중국 견제엔 동참하라는 얘기입니다.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도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방위비 증액 요구를 하는 데엔 미국의 4번째 전쟁, 즉 중국과의 충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개입하면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했던 방공 미사일 2만기를 이스라엘에 재배치한 실정인데요. 남중국해에서 작전 중이던 니미츠 항모전단을 중동으로 전개·재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은 전쟁을 동시에 벌인 탓에 러시아 견제는 유럽에, 중국은 한국·일본에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입니다.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셜펀드'(GMF)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가자지구, 레바논, 시리아 사태와는 달리 중동을 다시 안보 의제로 끌어올렸다"며 "유럽 재무장으로 미국은 미군의 유럽 주둔을 축소하고, 중동 해역에 상당한 공군·해군 병력을 배치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처지입니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일본 언론에 "5% 목표가 일본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일본이 오랜 기간 유지해 온 'GDP 대비 1%대 국방비'를 2027년까지 2%로 끌어올리려는 가운데 나온 발언입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반발해 내달 초 개최할 예정이었던 미·일 외교·국방 장관(2+2) 회의를 취소했습니다. '국방비를 GDP 3.5% 수준까지 늘리라'고 요구받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호주가 자체적으로 국방 지출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반응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 청구서'에 주요 동맹국의 반발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