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참매가 돌아왔다
2025-05-30 14:35:44 2025-05-30 14:35:44
참매 수컷이 알에서 부화한 어린 새를 살펴보고 둥지에서 나서고 있다. 어린 참매들은 참매 부부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란다.
 
“키익 킥킥 키익킥” 숲의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높은 소나무 가지에 한 마리 새가 날아듭니다. 진회색 등, 흰색과 갈색 가로 줄무늬가 있는 배와 가슴, 뚜렷하고 날카로운 눈매와 강력한 발톱을 가진 이 새는 바로 참매(Accipiter gentilis)입니다. 한 세기 가까이 자취를 감췄던 참매가 한반도의 숲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단지 참매 한 종의 복귀가 아닌, 자연이 제 힘을 회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참매는 북반구의 울창한 숲을 주된 서식지로 삼는 매목에 수리과(鷹科)에 속하는 맹금입니다. 북한의 '조선의 국조 참매' (2020)에서는 참매를 ‘전형적인 산림성 맹금’으로 소개하며, 수고 10m가량의 소나무숲이 이 종의 주요 서식지라고 설명합니다. 1 송골매가 탁트인 하늘을 고속 낙하하며 사냥하는 반면, 참매는 울창한 숲을 은밀하게 누비며 기습 사냥을 펼칩니다.
 
긴 꼬리와 짧은 날개는 숲 속 기동성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인내심도 강해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몇 시간이고 미동 없이 기다리다가 사냥감이 시야에 들어오는 찰나, 일격에 제압합니다. 숲이라는 엄폐된 장소를 활용해 사냥하는 참매는 숲속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로 자리합니다. 참매가 있다는 것은, 그 먹이인 작은 새와 설치류가 서식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곤충과 식물까지 복합적인 생물다양성이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참매는 건강한 산림 생태계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생물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참매는 한동안 우리의 자연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미국의 조류학자 올리버 루터 오스틴(Oliver L. Austin)은 저서 '한국의 새(The Birds of Korea)' (1948)에서 참매를 ‘한국에서 드물게 겨울에만 관찰되는 새(uncommon winter visitor)’라고 기록했습니다. 2 그는 번식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예로부터 한반도에 서식했지만 겨울철에 잠시 머무는 겨울철새로서, 한반도에서 사계절 살았었다는 사실은 잊혀져 갔습니다.
 
어린 참매들이 둥지 밖 움직이는 작은 새를 응시하고 있다.
 
그런 인식을 바꾼 전환점은 2006년 6월이었습니다. 충북 충주시의 야산에서 번식 중인 참매가 발견되며, 국내 첫 공식 번식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3 문화일보 김연수 기자가 보도한 이 기록 이후 잇따라 번식이 확인되면서 참매가 다시 한반도에서 터를 잡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떠났던 새가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는 건, 숲이 살아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참매는 야생의 포식자일 뿐 아니라, 인간 역사와도 오랜 인연을 함께한 새이기도 합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맹금류를 팔에 얹은 사냥꾼들이 등장하고, 고려 시대에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이 매와 수리의 사육과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참매와 송골매를 외교 관계에서 귀한 존재로 여겼고, 세종 8년(1426)에 명나라에 황응(黃鷹, 참매유조)을 보냈다는 기록도 '세종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왕이 직접 매사냥을 지켜봤다는
기록도 실록 곳곳에 남아 있을 정도로, 조선은 맹금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부터 매를 통한 외교와 매사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연이은 전란으로 왕실의 기세가 꺾이고, 무인의 기개를 상징하던 매사냥 문화가 위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맹금과 함께하던 호연지기(豪然之氣) 또한 사라져 갔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일부 민간 전통으로 참매를 이용한 매사냥이 명맥을 이어갔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어진 급격한 산림 훼손이 겹치면서 참매의 서식지와 매사냥 문화 모두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다시 한반도 숲에 모습을 드러낸 참매를 보며 우리는 자연의 회복력을 실감합니다. 5월에 부화한 어린 참매들은 여름 내내 둥지에서 자라며 생을 배워갑니다. 한때는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사냥과 외교의 장에 함께했고, 어느 순간 사라질 뻔했던 이 새는 이제 한반도의 자연으로 돌아와 소나무 푸른 숲을 날고 있습니다. 참매의 비상이 신록으로 물든 숲 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자유롭고 힘찬 날갯짓을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김경준, 오성일, 강대용, 림창성. 조선의 국조 참매. 평양: 외국문출판사, 2020.
2 Austin, Oliver L. The Birds of Korea. Bulletin of the Museum of Comparative Zoology at Harvard College 101, no. 1 (1948): 1–301.
3 김연수. “참매, 국내 첫 번식 확인…충주 야산서 포란·부화 성공.” 문화일보, 2006년 6월13일.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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