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씨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씨 파면 선고까지 꼬박 123일 동안 시민들은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남태령에서 내란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뉴스토마토> K평화연구원은 ‘시민영웅 1천명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난 4개월간 광장을 지켰던 시민들을 찾아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했습니다. (편집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21대 대선을 통해 들어설 새 정부는 △참사 진상규명 △희생자 명예 회복 △안전 사회를 위한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년6개월이 넘었지만, 아직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내내 거리에서 투쟁해야 했던 유가족들은 계엄 사태 이후 광장의 시민들과 함께 "윤석열 퇴진"을 외쳤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딸 이상은씨를 잃은 이성환·강선이 부부 역시 윤석열씨 파면 촉구 집회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강씨는 "윤석열정부의 계엄 전조가 이태원 참사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정부는 유가족들을 무성의하고 무자비하게 대해왔고,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처벌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지만, 바로 국회로 가는 건 망설여졌다고 했습니다. 정부가 그동안 이태원 참사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강씨는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국회로 갔는데, 그런 와중에도 우리가 참사 유가족인지 알면 어떻게 하지 하고 걱정했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당시에도 국회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국회에 갔고, 계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계엄 상황이 계속되는 걸 보면서 시민들과 함께 광장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참사의 희생자인 고 이상은씨의 아버지 이성환씨(왼쪽 두번째)와 어머니 강선이씨(왼쪽 세번째)가 지난 2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새 교황과 만나는 일반 알현에 참석했다. (사진=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윤석열씨 탄핵을 주장하는 집회에선 고 이상은씨 또래의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집회에 나와 '윤석열 파면'을 외쳤던 젊은이들이 바라는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고 했습니다. 이씨는 "유가족들이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만난 많은 시민에게 위로를 받았고, 우리 사회 약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됐다"며 "계엄 사태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꼭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이성환·강선이 부부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새 교황 레오 14세를 만났습니다. 일반 알현은 교황이 일반 신자들과 만나 교류하는 공식 행사로, 유가족들의 신청을 통해 교황과의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많은 시민이 불법적인 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 가치의 소중함을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계엄 정국을 바로잡기 위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함께 광장에 모이기까지 시민들의 사연들도 다양했습니다.
대학교 시간강사인 신정원씨는 계엄 선포에 충격을 받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국회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가는 와중에 열차 안에서 50~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울먹이는 소리로 "여러분, 오늘 저는 어쩌면 집에 못 돌아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가서 싸울 겁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신씨도 국회 정문에 도착해선 아들에게 "군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너는 엄마 아빠 걱정 말고 여의도공원 쪽으로 뛰어라. 우린 알아서 움직일 테니 나중에 집에서 보자"고 말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별다른 사고는 없었지만, 그만큼 당시 상황이 긴박했던 겁니다.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한 임영식씨가 국회의원과 시민들에게 받은 자필 메시지들. (사진=임영식 제공)
수원에 사는 권수연씨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계엄 소식을 알게 된 직후 같은 동네 가까운 사람들과 국회로 갔습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스물한살의 딸이 울면서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괜찮을 거라고 딸을 안심시키고 국회로 향해서 그곳에 모인 시민들과 '계엄 반대'를 외쳤습니다. 소요씨는 계엄 선포 이후 본인이 만든 '소나무 기사단'이란 깃발을 들고 집회에 매일 참여했습니다. 특별히 소속된 단체는 없었지만, 혼자서 깃발을 흔들며 광장을 지킨 겁니다. 이들 모두 비상계엄을 막아낸 시민들의 활동에 작게나마 힘을 보탰다는 사실이 평생 자부심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임영식씨는 국회 앞 집회에 이어 광화문과 남태령 등 탄핵 촉구 집회에 꾸준히 참여했습니다. 그러면서 집회 현장에서 만난 국회의원과 시민들의 자필 메시지를 받게 됐습니다. 그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다시는 슬픈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집회에 나갔다"며 "집회에 나오는 많은 시민이 어떤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지, 어떻게 광장에 나오게 됐는지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시인이면서 안온북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효인 대표는 계엄 정국에서 동료 시인, 소설가들과 함께 '작가성명'을 기획해 발표했습니다. 이 작가성명에 한강 작가를 포함해 414명의 문인이 참여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 대표는 "당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씨 파면 선고가 늦어지면서 답답함을 느껴 문인들의 성명 발표를 추진했다"며 "사흘 만에 41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구나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작가들이 보낸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면서 감동했고, 많은 사람에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공감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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