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차철우 기자] 불구속 상태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의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씨가 대선 한복판에 '부정선거'를 들고 뛰어들었습니다. 12·3 비상계엄에서 파면까지 겹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의힘에 부정선거 의혹까지 들이밀며 사실상 선거 패배의 쐐기를 박은 셈인데요. 당내에서조차 윤씨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1호 선거운동원'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윤석열씨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관람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석열 "부정선거, 음모론 아닌 실체"
대선을 13일 앞둔 21일 윤씨가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습니다. 지난달 4일 파면된 이후 재판 일정을 제외한 첫 공개 행보입니다. 종종 외부 활동 목격담이 확산하기도 했지만 첫 공개 행보로 부정선거론 옹호를 택한 만큼 대선 국면에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씨가 이날 관람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영돈 피디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기획하고 제작한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입니다. 윤씨는 "공명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밝히며 전씨의 초청에 응했다고 합니다. 그는 영화 관람 중 부정선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박수를 치기도 했고, 관람객들은 윤씨의 계엄령 선포 장면에 박수를 쳤습니다.
이 피디와 전씨 사이에 앉아 영화를 관람한 윤씨는 한 기자에게 "좋았어요"라고 해당 영화의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피디는 "(윤씨가) 다른 것보다 컴퓨터나 전자기기 없이 투명한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져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전씨도 "대통령이 함께했는데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2030 청년이 많이 보러 온다고 해 응원차 영화를 직접 관람했다"면서도 "다른 대선에 대한 메시지는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윤씨의 이날 참석이 탄핵 반대에 동의한 2030 세대에 대한 격려 차원이라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 윤씨는 부정선거에 대한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았는데요. 전씨에 따르면 윤씨는 "부정선거에 대한 것은 실체구나. 그냥 음모론, 거짓이 아니구나"라면서 영화 속에 부정선거에 대한 통계가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국민의힘도 '한숨'…민주 "재구속해야"
12·3 비상계엄의 후폭풍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만큼 윤씨의 등장은 그 무게감이 다릅니다. 부정선거는 윤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주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4일 윤씨에 대한 파면 선고에서 "어떠한 의혹이 있다는 것만으로 중대한 위기 상황이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 보안 취약점에 대하여 대부분 조치하였다고 발표하였으며, 사전·우편 투표함 보관장소 CC(폐쇄회로)TV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개표 과정에 수검표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였다는 점에서도 피청구인(윤석열)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결국 윤씨가 자신의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같은 공개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당에서는 당혹감이 내비쳐지고 있습니다. 대선까지 13일, 사전투표까지 8일 남은 상황에서 부정선거론의 부상은 악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부정선거론자들은 사전투표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는데, 자칫 지지층의 투표율 하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 후보는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공감을 나타내면서도 윤씨와 일정 부분 거리두기에 나선 모습입니다. 그는 "부정선거 의혹을 완전하게 일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 의혹이 있다면 선관위가 해명 노력을 해야한다"고 밝혔지만 윤씨에 대해서는 "대통령직도 그만 뒀고, 당에서도 탈당했다. 재판을 잘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당내에서는 부정선거에 최대한 거리를 두면서도 윤씨가 선거 패배의 쐐기를 박았다는 토로가 쏟아지는 모양새입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탈당한 윤씨를 거론하며 "저희 당과 이제 관계없는 분"이라면서 "개인적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계엄에 대해 반성하고 자중할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자통당(자유통일당), 우공당(우리공화당), 부정선거 음모론자들과 손잡으면 안 된다"면서 "국민의힘이 자멸하는 지름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당내 최다선인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 제1호 선거운동원을 자청하는 건가"라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의원 단체방에서는 영남권 중진 의원이 "좀 자중하시면 좋겠다"라고 했으며, 다른 다선 의원도 "벌써 사전투표는 100% 부정선거가 된다는 문자가 난무하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조차 재구속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친한(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우리 당이 살고 보수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구속만이 답"이라면서 "윤어게인 스톱더스틸 세력이 우리 당을 자기 놀이터로 삼는 한, 대선은 필패"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윤씨에 대한 '재구속'을 촉구하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이 후보는 유세 중 기자들과 만나 "본인이 이긴 선거 시스템도 부정선거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면서 "조만간 국민의힘이 석고대죄 국민 사죄 쇼를 할 텐데 국민들이 그런데 속을 만큼 정치적 의식이 낮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한민수 민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파면된 내란 수괴 윤석열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도 모자라 부정선거 망상을 유포하는 다큐멘터리를 공개 관람하며 대선에 직접 개입하려 나섰다"면서 "지금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있어야 할 곳은 영화관이나 거리가 아니라 감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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