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이유로 솝꼽는 것은 재정적자 구조의 만성화입니다. 세계 최강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조차 재정건전성을 잃으면 신뢰를 잃는다는 무디스의 경고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현재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50%를 밑돌아 100%가 훌쩍 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그나마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선심성 정책이 잇달아 도입되면서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특히 6·3 대선을 앞두고 대선 주자들의 대규모 재정 투입 공약이 쏟아지면서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한국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재정을 허투루 쓴다면 등급 하락 위험은 더 크기에 무디스의 경고는 더욱 무겁게 들립니다.
올해 국가채무 1300조 '육박'…2차 추경 시 '상회'
18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175조2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국가채무는 지난 2016~2018년 600조원대, 2019년 723조2000억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2020년 846조6000억원, 2021년 970조7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6.1%로, 2016년 34.2%에서 8년여 만에 10%포인트 넘게 급증했습니다.
기재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 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4%로, 지난해보다 2.3% 오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여기엔 지난 1일 국회 문턱을 통과한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반영했습니다. 추경을 반영한 올해 국가채무는 1280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5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6월 새 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2차 추경 편성까지 고려하면 국가채무는 13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100~200% 수준인 미국, 일본, 유럽 주요국 등과 비교하면 아직은 비교적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제 미국의 경우 국가부채가 36조2200억달러(약 5경744조원)에 달합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지난해 기준 123%에 이릅니다. 2013년 100%를 돌파한 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게 미국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무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지난 10여년간 미국 연방정부 부채가 지속적인 재정 적자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 기간 연방 재정지출은 늘어난 반면 감세정책으로 재정 수입은 감소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끌어내렸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재정건전성 뒷전인 대선 공약…국가 신인도 악화 우려
문제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입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04년 20%대를 돌파한 뒤 9년 만인 2013년(31.2%) 30%를, 이로부터 7년 후인 2020년(41.1%) 40%를 넘어섰습니다. 예정처는 국가채무비율이 2040년 80.3%, 2050년 107.7%, 2060년 136%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 같은 증가 속도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말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은 54.5%로 추정됐는데, 주요 비기축통화국 평균치인 54.3%를 넘어설 전망입니다. 미국을 향한 무디스의 경고가 뼈아프게 다가오며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한국의 재정적자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실질적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04조8000억원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4.1%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재정준칙상 기준인 3%를 5년 연속으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올해 역시 예산안상 84조7000억원 적자(GDP 대비 3.2%)로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큰 문제는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선 주자들의 선심성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다수 감세 또는 대규모 재정 투입을 필요로 하는 하는 공약들이지만,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수 증대 등 추가 재원 마련 없이 공약들을 추진할 의지를 보이면서 우려를 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재정적자 악화는 물론, 국가채무비율이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이럴 경우 대외 신인도 악화로 이어지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국가신용등급 강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선심성 공약에 따라 무턱대고 재정 지출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현재 국가부채와 재정적자 모두 주요국과 비교하면 아주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이 지속되면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세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성장률을 높여 세입을 증가시키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재정정책을 이끌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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