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텔코웨어가 성장의 한계를 느낀다며 일반 주주들의 주식을 전량 매수해 자진 상장폐지한다고 공시해 주가가 급등했습니다. 밸류업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제도 개선을 천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오르면서, 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기업 경영진이 자진상폐를 선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텔코웨어처럼 최대주주 지분과 자사주가 많으면서 현금부자인 기업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따르면, 19일 텔코웨어의 최대주주인 금한태 대표는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한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합니다. 공개매수 예정 주식 수는 지분율 25.24%에 달하는 233만2438주로 이는 금 대표와 특수관계인 보유주식, 여기에 자사주 407만6074주(44.11%)를 제외한 나머지 발행주식 전량입니다.
텔코웨어 “성장 한계”…이재명 정책에 부담?
텔코웨어는 통신장비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기업입니다. 이번 SK텔레콤 해킹 사태에서도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장성은 크지 않지만 안정적인 실적과 우량한 자산을 바탕으로 매년 30% 넘는 배당성향을 유지하고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등 주주환원을 잘해 투자자들로부터 안정적인 배당주로 평가됐습니다. 다만 시장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소외된 경우가 많습니다.
금 대표는 공시를 통해 “통신솔루션 산업은 외형 성장 여력이 제한적이고 신규 수익원 확보가 어려운 구조적 특성이 있어, 주가 저평가가 지속됐고 주식 거래도 부진했다”며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 요청도 계속됐다”고 공개매수에 나선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금 대표의 공개매수가격은 주당 1만3000원입니다. 덕분에 9810원이었던 주가는 공시 직후 상한가로 뛰었고 20일에도 추가 상승, 1만2910원을 기록하며 공개매수가에 바싹 다가섰습니다.
금 대표가 주식을 전량 매수하려면 약 303억원의 재원이 필요합니다.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로 보유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이 동원됩니다. 큰 돈이 필요한 일이지만 1분기 말 기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과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금융상품만 560억원에 달해 부담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상장폐지 후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면 개인회사와 다름없어 자금 활용의 제약은 거의 사라집니다.
텔코웨어는 성장의 한계와 시장에서의 소외, 주주들의 요청을 자진상폐의 이유라고 했지만, 여기엔 또 다른 원인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밸류업 정책, 여기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설 경우 추진될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체질 개선입니다. 두 가지 정책은 최대주주 견제와 주주환원 확대, 이를 통한 저평가 해소에 맞춰져 있습니다. 현금을 쌓아둔 채 투자도 하지 않은 채 주주환원에는 소극적인 기업, 자사주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으나 소각하지는 않는 기업들은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엔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한다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표=뉴스토마토)
회삿돈으로 남은 주식 매수 가능
텔코웨어의 경우 공개매수 및 자진상폐 공시 전 시가총액이 1000억원 미만인데 현금성 자산만 500억원이 넘는 알짜부자에 44% 지분을 자사주로 보유 중이었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상장폐지를 서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주식시장엔 텔코웨어처럼 자사주와 현금은 많고 최대주주 보유비중은 높은 종목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영증권은 지난해 4월 우선주 전량을 보통주로 전환하면서 꾸준히 올라 6만원 미만이었던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1987년 상장 이후 사상 최고가 기록입니다. 여기엔 신영증권이 밸류업에 나설 경우 52.58%에 달하는 자사주를 처분하는 방안이 담길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그중 일부만 소각해도 주식가치는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21.85%를 더할 경우 74.4%에 달하기 때문에 나머지 주식을 공개매수해 상장폐지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현재 신영증권의 시가총액은 1조7800억원, 지난 연말 기준 보유현금은 1조원에 육박합니다. 텔코웨어는 최대주주가 직접 공개매수에 나섰지만, 회삿돈으로 남은 주식을 자사주 명목으로 공개매수해 상장폐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일성아이에스도 1분기 말 현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38.19%, 자사주신탁 포함 자사주는 48.75%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둘을 합치면 거의 87%입니다. 현재 시가총액은 2300억원을 밑도는데 보유 현금은 1200억원에 달하므로 언제든 지금보다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사겠다고 공시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최대주주+자사주 보유비중 커야 가능
이밖에도 엘엠에스, 모토닉, 대한방직, 샘표 등이 최대주주와 자사주 비중이 높고 현금이 많은 기업들입니다. 지금까지 기업가치제고계획 이른바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다만 조광피혁처럼 대주주 명단에 다른 투자자가 포함돼 있는 경우는 상폐 가능성이 떨어집니다. 조광피역도 자사주가 46.57%에 달하고 이연석 대표 등이 30.65% 지분을 보유 중입니다. 1분기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 562억원, 이익잉여금 2790억원과 비교해 현재 시가총액(3737억원)이 부담스럽지는 않아 나머지 주식을 공개매수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대주주 명단에 올라 있는 ‘주식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가 변수입니다. 그의 보유지분도 15.20%에 달합니다. 박 대표는 과거 조광피혁 경영진과 가처분 소송을 벌인 적이 있고 이번정기주총을 앞두고도 자사주 전량 소각과 배당 증액을 요구하는 등 마찰을 빚었습니다. 경영진이 공개매수를 추진하려면 그의 동의가 필수인데 적당한 가격으론 타협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커스의 경우에도 글로벌 운용사 피델리티가 9.99% 지분을 갖고 있어 피델리티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불가능합니다.
공개매수는 해당 종목의 주가와 자산가치를 감안해 결정합니다. 대부분 당시 주가를 크게 웃도는 가격이 책정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주들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 주가보다 크게 높은 가격이어도 자산가치를 현저히 밑돈다는 평가가 많으면 공개매수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개매수가를 높이기 위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고 버티는 주주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소식이 나오면 주가는 급등합니다. 텔코웨어의 사례를 보면서 이와 닮은 종목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텔코웨어의 공개매수와 자진 상장폐지 공시를 계기로 또 한 번 자사주 비중이 큰 기업들이 조명받고 있다. 신영증권도 최대주주 지분과 자사주를 제외한 일반 주주들의 주식 비율은 높지 않다.(사진=신영증권)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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