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상장지수펀드(ETF)의 무게중심을 미국에서 중국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딥시크(DeepSeek) 등 중국 인공지능(AI) 기술이 부상하고 중국 정부의 산업 고도화 정책 강화에 테크 기업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 따른 것입니다. 여기에 재정 확장 기조와 정책 여력까지 뒷받침돼 운용사들은 지금이 중국 투자에 유리한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중국 기술주 테마 ETF 4종을 동시에 선보였습니다. 하루에 4종의 ETF가 동시 상장한 것은 드문 일로 알려졌습니다. 운용사들이 ETF 신상품 전략이 중국 테크주로 일치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ETF 시장은 미국에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상장한 ETF 가운데 중국 본토나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상품은 '에셋플러스 차이나일등기업포커스10액티브'가 유일했습니다. 이는 미국 증시의 상승세가 이어지며 자금이 미국에 쏠렸던 영향입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이 AI, 로봇,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는 평가와, 민간 테크 기업의 성장성에 정부의 정책 지원이 더해져 중국 투자가 다시 조명받고 있습니다. 생성형 AI '딥시크'는 저비용 구조에도 챗GPT에 필적하는 성능으로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중국 정부의 전략 변화도 주목받는 요인입니다. 내년부터 시행될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는 AI, 클라우드, 산업용 소프트웨어 등이 국가 성장동력의 핵심 축으로 제시됐습니다. 정책과 산업이 동시에 맞물리는 시점이라는 판단이 운용사들의 ETF 전략 전환을 이끈 것으로 분석됩니다.
삼성자산운용의 'KODEX 차이나휴머노이드로봇'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산업에 100% 투자하는 ETF입니다. 완성형 로봇 제조사에서부터 부품 공급사까지 20개 종목에 분산 투자하며, 해외 ETF 중 최초로 해당 테마에 단독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해당 산업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구조적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차이나테크TOP10' 출시, 기존의 '차이나전기차', '항셍테크' 라인업을 확장했습니다. 비야디(BYD), 텐센트, 알리바바, 샤오미 등 이른바 '테리픽10(Terrific 10)'을 중심으로 AI·반도체 등 전략 산업에 집중합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측은 "중국 기술주에 대한 재평가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민간 테크 기업 중심의 장기 투자 기회를 제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화자산운용은 'PLUS 차이나AI테크TOP10'에서 테리픽10 중 AI 연관성이 높은 종목으로 압축 구성했습니다. 시가총액과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종목을 선별해 항셍테크 대비 변동성은 낮추고 수익률은 높이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액티브 ETF인 'TIMEFOLIO 차이나AI테크액티브'로 더욱 유연한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이 ETF는 중국 본토, 홍콩, 대만에 상장된 AI 관련 대표 기업에 분산 투자하는 상품으로, 단일 산업이 아닌 AI 소프트웨어, 반도체, 전기차, 로봇 등 10대 전략 산업 전반을 포괄합니다.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 SMIC, 화홍반도체 등 중국 대표 기업뿐 아니라 TSMC, ASE, UMC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BYD, 샤오미 등 전기차·로봇 종목까지 담아 기술 생태계 전반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기술주의 주도주 변화가 빠른 만큼 액티브 전략의 기민함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운용사들이 저마다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국 투자를 둘러싼 불확실성 우려도 여전합니다. 운용사들도 이에 대응해 각자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삼성자산운용은 홍콩법인과 내부 리서치를 통해 본토 시장에 대한 정밀 분석과, 휴머노이드 산업의 변동성을 고려한 유동성과 시가총액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정책 변화와 규제 가능성을 반영해 종목을 선별합니다. 한화자산운용은 정량적 필터링을 통해 고변동 종목을 걸러내고 있고,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싱가포르법인의 리서치 역량을 활용해 회계 투명성과 정책 리스크를 중심으로 사전 필터링 시스템을 운영 중입니다.
전문가들은 중국 테크 ETF에 투자할 때는 단기 테마성 접근보다 정책 리스크와 구조적 성장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임은혜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테크주는 가격 메리트가 있지만 정책 불확실성과 지배구조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며 "투자시 정책 흐름과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ETF라고 해도 결국 펀드인 만큼 단기 반등보다는 산업 고도화에 베팅하는 중장기 전략이 중요하다"며 "수급 변동성에 흔들리기보다는 리서치 기반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중국 ETF에 투자하는 모습.(사진=오픈AI)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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