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은퇴자 도시’ 조성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강원도 내 일부 지역에 미니 신도시형 은퇴자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초고령화 사회의 주거 문제와 지역 균형 발전을 한번에 해결할 방안으로 기대가 모아지는 가운데 은퇴자 도시 대명사로 꼽히는 미국 애리조나주 ‘선시티’(Sun City) 사례를 국내에서도 실현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경청투어'에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강원도 지역 어르신들과 만나 여러 얘기를 전해 듣고 있다. 이 후보는 강원도 내 춘천, 원주, 평창 등에 미니 신도시형 은퇴자 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선시티'와 한국형 은퇴자 도시 구상
이 후보가 지난달 23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지역 표심 공략을 위해 강원도 내 춘천, 원주, 평창 등에 미니 신도시형 은퇴자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은퇴자 도시 조성’은 초고령화 사회 주거 문제를 해결할 방안으로 맹성규 민주당 의원이 '은퇴자마을(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민주당 내에서 공을 들이는 사안입니다.
이 후보는 수도권 고령인구를 분산하고 인구밀도가 낮은 강원도의 소비활동을 촉진하는 지역 표심 공략을 위해 이 같은 공약을 내건 것으로 보이는데요. 은퇴자 도시 구상은 그동안 이 후보가 줄곧 강조해온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소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공약을 위해 이 후보는 춘천과 강릉에 닥터헬기 및 소방헬기 추가 배치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의료 체계 확립 및 이를 위한 안전망 확보가 은퇴자들의 안정적 정착에 필수적이란 점을 고려한 겁니다. 또한 철원, 화천, 양구, 인제, 고성 등 북한 접경지역은 평화경제특구와 평화관광특구로 개발하겠단 공약도 발표했습니다. 접경지역에 특별한 인·허가 및 세제 지원 혜택을 부여하고 DMZ 생태자원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산업을 적극 지원할 방침인 겁니다. 단순한 거주지 조성을 넘어 은퇴자 도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국토 균형 발전 초석 활용으로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국내 현실에서 은퇴자 도시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균형 발전의 해법으로 주목되고 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은퇴자 마을 성공 조건과 과제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감소가 심화되면서 특히 지방 중소도시들은 생존을 위한 인구 유입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충북 괴산군은 1980년대 초반 11만명을 넘던 인구가 현재는 3만명대까지 급감했는데요. 이는 단지 괴산군만의 문제가 아닌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 마련을 논의 중인데요. 이 가운에 하나가 ‘은퇴자 도시’ 조성으로, 이 후보의 공약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퇴자 도시가 성공하려면 몇 가지 핵심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게 경제적 기반입니다. 경제활동이 전무한 곳에 마을만 들어선다고 은퇴자들이 정착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은퇴 후 지속적 소비가 가능하려면 연금을 포함한 안정적 소득원이 필수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후보는 자신 있어 보입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표를 지내는 동안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강한 소신을 보여왔습니다. 그의 대표 정책 중 하나인 지역화폐는 지역 내 소상공인 지원을 목표로 설계된 경제 활성화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은퇴자 도시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기 위해선 생산 활동이 제한적인 은퇴자들을 위한 생활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야 합니다. 군 단위 지역은 상권이 부족하거나 배달 서비스 등이 제한적인데요. 기반시설 부재는 곧 생활의 불편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이 후보의 은퇴자 도시 구상 역시 단순한 지역 거주지 조성을 넘어 경제·사회 구조 개선을 목표로 합니다.
강원도와 같은 인구 밀집도가 낮은 지역에 은퇴자를 유치하고 교통과 의료 인프라를 빠르게 확충하는 전략을 보면 미국의 선시티와 유사한 성공 모델이 국내에 구축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GTX 노선 확장, 고속철도 조기 완공 등 교통망 개선 계획도 은퇴자 도시 실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은퇴자 도시'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의 '선시티'. (사진=선시티 홈페이지)
한국판 선시티, 가능성은?
미국 선시티는 1960~1970년대 조성된 은퇴자 전용 도시입니다. 여가 및 문화 시설을 중심으로 성장한 이 도시는 2020년 기준 약 4만여명이 거주 중이며, 이 가운데 80%가 65세 이상 인구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곳 은퇴자들은 단순 거주를 넘어 경제·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활발한 지역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은퇴자마을(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맹성규 의원은 뉴스토마토에 “미국 ‘선시티’를 방문해 운영 실태를 살펴본 후 한국형 은퇴자 도시 조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며 “초고령 사회 진입과 함께 국내 은퇴자들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가 중요한 문제가 됐다. 생애주기별 돌봄 체계를 고려할 때 호스피스나 간호·간병 서비스 이전 단계로서 은퇴자 도시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초고령화 시대 주거와 생존 문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 돼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후보 공약대로 강원도를 시작으로 은퇴자 도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하면 조만간 국내에도 ‘한국판 선시티’가 현실화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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