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원래 벌을 키웠는데 이번 산불로 집이고 벌통이고 홀라당 탔십니더. 지금 대피소에서 겨우 몸만 챙기는데, 생계고 뭐고 손에 잽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정부고 정치인이고 말로는 맨 도와준다 도와준다 카는데, 정작 뭘 해준 게 없어요. 가슴만 답답하고 속만 터지는 기라요. 여태껏 뿌리내리고 살아온 곳인데 거 놔두고 어데로 가라는교. 참말로 서글퍼요."
역대급 산불피해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게 흘렀지만, 이재민들의 상처는 여전합니다. 경북 안동에서 만난 손용원(70)씨도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습니다. 한달 넘게 제대로 된 복구도 진행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도 없다는 겁니다. 그럴수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실망감만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지역 자원봉사자들과 지역민들은 이재민들이 자력으로 재난을 극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더 많은 봉사활동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직접적인 봉사가 어렵다면 피해지역으로 관광을 와서 지역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했습니다.
3월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주택과 농경지, 산림을 가리지 않고 불태웠습니다. 이 때문에 인근에 위치한 안동은 4명의 사망자, 6명의 부상자와 더불어 2만6708㏊에 이르는 면적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약 1100세대에 이르는 이재민도 발생했습니다.
산불이 발생한 지도 한 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하지만 이재민의 상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경북 안동의 일직면 일대와 남후농공단지 등 산불 피해 지역을 살펴보고, 제일 많은 이재민이 모여 지내는 길안중학교 체육관 임시대피소를 찾았습니다.
지난 2일 경북 안동 일직면 일대에 방치돼 있는 산불피해주택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2일 경북 안동 남후농공단지 내 산불 피해를 입은 공장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이곳에서 만난 서복래(89)씨는 "집과 사과나무 등 농경지가 모두 탔다. 앞으로의 삶을 이어갈 희망이 없어 힘겹다"고 토로했습니다. 손용원씨 역시 "집을 비롯해 벌집과 농기구가 다 불에 타버려 생업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시장과 시의원이 대피소에 들렸다 갔지만, 어떤 피해 지원을 해준다는 건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취재진이 만난 다수의 이재민들은 공통적으로 피해 대책과 지원 내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80대 이상 노년층이라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현장 관계자는 "선별 지원, 행정 공백 최소화, 이재민에 대한 디테일한 접근이 매우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정향우 안동시산불피해주민대책위원장은 '보상'이 아닌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산불을 초동 진화하지 못한 행정의 실패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를 전부 복구할 수 있을 만큼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피해가구에게 재난지원금을 몰아주는 게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균등 분배하면서 최고 3600만원까지 받을 수 있었던 금액이 30만원까지 줄어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상에 대해 주민대책위와 상의했으면 좋겠는데, 시장과 시의원들은 일방적인 행정을 도움이 안되는 방향으로 행하고 있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지자체에 실망감이 크다"고 성토했습니다.
지난 2일 경북 안동 일직면 일대에 이재민 임시 입주 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2일 경북 안동 일직면 일대의 산림이 산불에 타 그을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고운자 안동시자원봉사센터장은 "타 시·군 주민들의 봉사 참여를 간곡히 부탁"한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는 "재해 초기에 무작정 자원봉사자를 투입하면 2차 사고가 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보험회사나 기관에서 안전 진단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산불이 났을 때는 4000명 정도가 봉사를 하겠다며 연락을 주셨는데, 그때는 모실 수 없었다. 지금은 아무도 봉사를 하겠다고 연락을 주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재해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지자체 공무원들의 힘만으로는 극복이 어렵다"고 호소하며 "지난 1일부터 '1365 자원봉사포털'을 통해 개인과 단체 모두 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안동시자원봉사센터에 문의하면 △배식 및 세탁 △입주 시설 청소 △물품 이송 및 정리 △농경지 및 비닐하우스 재건 등을 안내받을 수 있다. 의류나 생필품도 센터에 기부하면 이재민들께 분류해서 전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과천시의회 정책지원관으로 일하고 있는 서정민 봉사자는 "연휴 동안 산불 피해를 입은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무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현장에 와보니 급식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지원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이제부터라도 더 많은 손길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3일 고운자 안동시자원봉사센터장이 경북 안동 길안중학교 체육관 임시대피소에서 이재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3일 서정민 봉사자가 경북 안동 길안중학교 체육관 옆 봉사자 부스에서 이재민들을 위한 한 끼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준년 안동찜닭생산협회 회장은 "짬닭 골목 매출의 85%는 관광객 몫이었으나, 6월까지 꽉 찼던 예약이 산불로 인해 대부분 취소됐다"고 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관광객이 많이 와주길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찜닭골목 점포 25곳이 연합해 10%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며, 차액을 재해 복구를 위해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김대년 안동시의회 정책지원관은 "안동 관광도 하나의 봉사다. 지역 주민들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 안동 하회마을 등 문화유산에 관광을 많이 와줬으면 한다. 재해 복구를 위해 전국민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습니다.
허승규 안동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이제는 정치의 시간"이라며 "이번 대통령 선거가 산불재난극복 대선이 될 수 있도록 후보들이 국회 특별법 제정 등 재난 회복 관련 대선 공약을 내세워주길 바란다. 산불 피해 지역으로 올해 여름 범국민 관광 캠페인 독려도 고려해달라"고 제언했습니다. 그는 "산불재난 예방을 주제로 정치권에서 토론이 이어지길 바란다. 유권자들이 정치인과 정당에 요구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봉사와 관광 뿐 아니라 이러한 '유권자 기후행동'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경북 안동=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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