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우원식 국회의장 등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4·27 남북 판문점 선언 7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본청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25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는 지난 3년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다"며 향후 들어서는 새 정부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4·27 판문점 선언 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3년 됐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3년이었다"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함께 공들여 이룩한 탑이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고 말을 꺼냈습니다.
윤석열정부에 대해서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반동과 퇴행의 시간이었다"며 "모든 분야에서 멈춰서고 뒷걸음질 쳤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무너져내렸고, 국민의 삶은 힘겨워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자긍심은 사라지고 추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탄식과 우려가 커져만 갔다"며 "전임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더욱 참담하고 무거웠다"고 심정을 밝혔습니다.
특히 남북 관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는데요. 문 전 대통령은 "모든 대화는 단절됐고, 평화의 안전핀이었던 9·19 군사합의마저 파기됐다"며 "급기야 윤석열정부가 계엄을 위한 위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수사가 주목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에도 거듭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북미 간 말 폭탄으로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 직면해 있었지만, 남북 대화를 통해 전쟁의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며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고, 도저히 대화를 말할 분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대화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은 이미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물밑 접촉이 시작됐을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가 그 대화의 구경꾼이 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현 시점에서 9·19 군사합의 복원과 균형 외교, 전방위적인 외교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핵무장론과 관련해 "북한의 핵 개발에 면죄부를 주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으로 동북아를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 수 있는 무책임한 주장"이라며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경제 제재를 초래하며, 국가와 민족을 공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천만한 주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다시 한반도 평화의 길로 나설 때"라며 "역대 민주당 정부가 굳은 의지와 이어달리기로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했듯이, 평화를 지향하는 유능한 새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잇고,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길 기대한다"고 부연했습니다.
다음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4.27 판문점 선언 7주년' 기념사 전문.
4.27 판문점 선언 7주년 기념행사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반가운 인사를 드립니다. 김대중재단, 노무현재단, 포럼 사의재, 한반도평화포럼이 함께 오늘 행사를 준비해서 더욱 뜻깊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이어달리기하며 만들어온 주역들로서, 절체절명의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서로의 의지를 하나로 모으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힘을 모아주신 단체와 원로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3년 되었습니다.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3년이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국민과 함께 공들여 이룩한 탑이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나라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나날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승격한 유일한 나라, 지난 8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라는 국민적 자부심이 무너졌습니다.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자긍심은 사라지고 추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탄식과 우려가 커져만 갔습니다. 전임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더욱 참담하고 무거웠습니다.
지난 3년은 그야말로 반동과 퇴행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멈춰 서고 뒷걸음질 쳤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무너져내렸고, 국민의 삶은 힘겨워졌습니다.
한국 경제는 지난 3년간 침체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중고에 민생경제는 더욱 어려워졌고, 잠재성장률 2%에도 미치지 못하는 1%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저성장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부터 최악의 성적을 보였습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수출 실적은 19.2% 증가했지만,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2022년부터 2024년 사이에는 증가율 제로를 기록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민생경제의 지표인 내수 소비는 더욱 침체되었습니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부터 작년 말까지 소비지수가 역대 최장 기간인 11분기 연속으로 감소했습니다. 노동자 실질임금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으로 해마다 감소했고, 체불임금 역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제조업 취업자 수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적었습니다.
이토록 경제가 어려운 데도 국가재정은 제 역할을 못했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회피했고, 오히려 막대한 세수 결손을 초래했습니다. 2023년과 2024년 각각 56조원, 31조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027년까지 60조원 이상의 추가 세수 감소가 전망되고 있습니다.
나라 곳간이 비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와 서민들의 민생과 복지를 위한 정부 역할을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경제 실패와 무책임한 부자 감세에 기인한 것으로, 세수 기반이 허물어지고 우리 경제의 대응력을 약화시킨 후과를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떠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지탱해내 OECD 주요국 가운데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전임 정부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비난하면서 거꾸로 간 결과입니다.
민주주의 역시 지난 3년간 크게 후퇴하였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16위까지 상승했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윤석열정부에서 큰 폭으로 하락하며 역대 최저점수, 최저 순위를 기록했고,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전락하였습니다.
스웨덴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 등급을 강등하며, 한국을 ‘독재화가 진행 중인 45개 국가’ 중 하나로 분류했고,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도 큰 폭으로 하락하여 세계 62위로 떨어졌습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는 지난 3년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대 정부의 성과와 노력은 송두리째 부정되었습니다. 모든 대화는 단절되었고, 평화의 안전핀이었던 9.19 군사합의마저 파기되었습니다. 끝간 데 없이 대결을 부추기고 긴장을 고조시키며 남북이 언제 군사적으로 충돌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급기야는 윤석열정부가 계엄을 위한 위기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을 유발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드러나 수사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역대 정부가 계승해온 균형 외교를 파기하고,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편협한 진영외교에만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주변국의 반발을 키우며 국익은 훼손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땅이 되어야 할 한반도는 신냉전 대결의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이제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됐지만, 윤석열정부가 망쳐놓은 외교를 다시 정상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입니다.
윤석열정부의 모든 분야에 걸친 총체적인 국정 파탄은 대통령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집권 세력의 낡은 이념과 낡은 세계관, 낡은 안보관과 낡은 경제관이 거듭해서 총체적인 국정 실패를 초래해왔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12.3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퇴행의 결정판이었습니다. 민주화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시대착오적 일이 대명천지에 벌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수십년 전 군부독재 시대에나 있었던 어둠의 역사가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고 세계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방심하면 언제든지 역사를 거스르는 퇴행적 시도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있어야 역사의 반동을 막고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새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은 매우 깊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짜뉴스와 그릇된 신념과 망상에 기초한 증오와 혐오, 극단의 정치가 국민통합을 해치고,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비정상과 몰상식이 판을 치며 민주주의를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는 현실을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통합과 상생, 연대와 협치의 정치도 이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비상계엄이 남긴 경제적 손실 또한 엄청납니다. 한국은행은 국내총생산이 6조원 이상 증발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두 달만에 자영업자 수가 20만명이나 감소하는 등 민생경제에 준 악영향은 더욱 큽니다. 그나마 국회가 신속하게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평화적으로 사태를 종식시킨 것이 환율과 주식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대외 신인도의 추락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은 국가 리더십 공백을 자초했습니다. 격변하는 국제 질서와 격화되는 글로벌 통상전쟁에 적시에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생긴 국가적 손실을 지금 우리는 겪고 있습니다.
역사는 때로는 후퇴하지만 결국 전진한다고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가 경탄하는 놀라운 민주주의 회복력을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위대한 나라입니다. 지난 3년간 퇴행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국민’이 있습니다. IMF 위기극복에서, 촛불혁명에서, 코로나 대유행의 극복에서, 그리고 최근의 빛의 혁명까지, 언제나 깨어 있는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며 대한민국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섰습니다.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리며 민주, 민생, 평화의 길로 나아갈 기회를 만들어냈습니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역대 민주당 정부는 역대 보수정권이 남긴 퇴행과 무능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을 다시 전진시켜내는 것이 운명처럼 되었습니다. 국민이 선택하게 될 새 정부가 국민과 함께 훼손된 대한민국의 국격을 회복하고, 더욱 유능하게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퇴행과 전진을 반복해온 역사도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반도 평화의 길로 나설 때입니다.
역대 민주당 정부가 굳은 의지와 이어달리기로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개척했듯이, 평화를 지향하는 유능한 새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역사를 잇고, 새로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기를 기대합니다.
남북 간의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에도 거듭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과 북미 간의 말폭탄으로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 직면해 있었지만, 결국 남북 대화를 통해 전쟁의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남북 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고, 도저히 대화를 말할 분위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대화의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미국과 일본은 이미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물밑 접촉이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 대화의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9.19 군사합의를 복원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우발적 충돌에 의해 촉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은 위험한 주장입니다. 북한의 핵 개발에 면죄부를 주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이며, 동북아를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 수 있는 무책임한 주장입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경제 제재를 초래하며, 국가와 민족을 공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천만한 주장입니다.
균형 외교는 안보와 경제를 위해 가장 중요한 국가 생존 전략입니다. 편중외교는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을 치명적 약점으로 만들어버리는 어리석은 발상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조건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 평화와 번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지혜로운 외교 전략이 필요합니다. 긴밀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주변국들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에 평화의 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한편, 호혜적인 경제협력과 민간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당장은 외교를 복원하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무모한 비상계엄으로 상당 기간 정상외교의 공백을 초래했고, 외교의 골든타임을 날려버렸습니다. 새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서둘러서 국익과 평화를 최우선에 둔 전방위적 외교 복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평화는 목표인 동시에 과정입니다. 역대 정부가 남북 간의 신뢰를 쌓고, 대화했던 노력들 하나하나가 평화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네 번의 남북정상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한반도 평화의 정상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화의 길을 다시 이어 나간다면 반드시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평화를 위해,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맬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항상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위대한 우리 국민 덕분에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하며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고 새롭게 도약하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민과 함께 역사의 퇴행을 바로잡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킨 힘으로 더 굳건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경제와 민생이 다시 활력을 되찾길 바랍니다. 뜨거운 민주주의 열정이 평화를 향한 열망으로 모여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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