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평화의 상징, 저어새
2025-04-11 10:11:19 2025-04-11 14:31:56
서로 돕는 정신이 생활에 젖은 저어새가 동료의 목 깃털을 부리로 다듬어주고 있다.
 
저어새(Platalea minor, Black-faced Spoonbill)를 보신 적 있나요? 저어새를 직접 본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이 새는 도심이 아닌, 갯벌이나 갯벌 인근의 습지, 무인도에 서식하는 물새랍니다. 그렇지만 ‘저어새’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낯설지 않아요. 환경운동의 상징으로 알려진 새거든요. 1990년대 초 전 세계 개체수가 300마리 이하로 줄었다는 저어새의 생존 위기가 알려지면서 국내외 언론은 이 새를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의 NHK방송에서는 ‘이 새를 아십니까?’라며 대대적인 저어새 찾기 운동을 벌였죠. 이후 환경단체와 학자들이 저어새 보호 운동을 이끌면서, 저어새는 ‘지켜야 하는 새’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저어새는 해마다 4월이면 겨울을 보낸 대만을 떠나 한반도 서해안의 외딴섬으로 돌아옵니다. 특히 연평도와 백령도 인근의 무인도는 괭이갈매기와 함께 저어새의 주요 번식지예요. 이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둥지를 틀고 짝을 짓고 집단 번식을 해요. 5월 초 둥지마다 2~3마리의 새끼가 부화하고, 어린 새들은 6~7월이면 어미를 따라 육지와 인접한 갯벌이나 습지로 이동합니다. 이 시기 저어새는 민물성 먹이를 필요로 해요. 어린 새는 염분이 많은 갯벌의 먹이를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번식 초기에는 논과 같은 담수 습지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특히 4월부터 6월까지 벼농사를 위해 논에 물이 차 있는 시기에는, 이 물을 머금은 논이 저어새에게 중요한 먹이터가 됩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성장한 6월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갯벌에서 먹이활동이 시작합니다. 이렇듯 저어새의 생존을 위해서는 갯벌 생태계뿐만 아니라 논을 포함한 내륙 담수 습지 또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 저어새의 약 99%가 한반도 경기만 일대에서 번식해요. 나머지 1%는 발해만이라고 불리는 중국 보하이만(渤海灣)과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터를 잡고 있어요. 이처럼 저어새는 한반도에서 거의 전적으로 살고 있는 ‘한반도 고유의 새’라고 할 수 있어요. 경기만의 북방한계선(NLL) 인근 무인도, 강화도·영종도·볼음도 등의 자그마한 갯바위 섬들, 그리고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도 해안이 주요 번식지 입니다.
 
1990년 초,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저어새는 단 288마리뿐이었어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저어새를 ‘심각한 멸종위기종(CR)’으로 지정했고, 남북한과 저어새 월동지인 대만·홍콩·베트남 등에서 NGO와 함께 국제적인 보전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개체수는 점차 회복되어 2000년에는 ‘멸종위기종(Endangered)’ 등급으로 다소 완화되었고, 현재는 약 7000여마리로 늘어나 약 35년 만에 10배 이상 개체수가 회복되었어요.
 
저어새 무리가 갯벌에서 먹이 사냥 중 만조가 되면 인근의 민물 습지를 찾아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멸종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의 정부와 지자체가 저어새의 주 서식지인 갯벌과 습지를 여전히 개발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에요. 인천시의 송도와 영종도 갯벌 대부분은 이미 사라졌고, 섬 내부의 얕은 습지 또한 깊고 정체된 인공 호수로 대체되었습니다. 저어새와 같은 물새는 ‘발을 담글 수 있는 정도로 수심이 얕고, 물이 흐르는 습지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연 습지는 사라지고, 생명이 머물 수 없는 ‘죽은 호수’만 남았어요. 저어새는 하얀 몸에 검은 얼굴과 부리를 가진 아름다운 물새랍니다. 멀리서 보면 백로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전혀 다릅니다. 둥글고 부드러운 숟가락 모양의 부리를 가진 저어새는 얕은 물속을 휘저어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사냥합니다. 이렇게 고개를 저어가면서 먹이를 찾는 독특한 사냥법 때문에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저어새가 물속을 휘저을 때면 중대백로가 그 곁을 따라다니며 저어새가 건드린 먹잇감을 낚아채거나 심지어는 빼앗는 모습도 종종 관찰됩니다.
 
밀물과 함께 숭어 치어 무리가 몰려들면, 갯벌은 어느새 물새들의 축제로 변합니다. 저어새는 물속을 휘젓고, 가마우지는 잠수해 사냥하며, 백로와 왜가리는 이들을 따라다니며 그 곁에서 어부지리를 노립니다. 부리가 둥근 저어새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부드럽고 둥근 부리로 인해 타인을 해칠 수 없는 생김새를 가졌을 뿐 아니라, 사냥을 마치고 무리를 지어 휴식하며 서로의 깃털을 다듬어주는 다정한 행동을 보입니다. 특히 자신의 부리가 닿지 않는 머리 부분을 이웃이 다듬어주는 행위는 부부나 형제가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한반도에서 인간보다 먼저 살아온 이 새의 평화롭고 배려 깊은 삶은, 남을 침략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비슷합니다.
 
최근 우리 대한민국은 깊은 갈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어요.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과 무역 갈등, 국내 정치의 분열까지, 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통해 혼란 정국은 첫 과제는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상처와 불신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땅의 터줏대감 저어새가 다시 생각납니다. 둥글고 부드러운 부리로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부리가 닿지 않는 곳은 서로 도와 깃털을 다듬어주는 새. 갈등보다는 협력을, 독점보다는 나눔을 실천하는 저어새의 삶에서 우리는 중요한 가치를 되새깁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야말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요?
 
글·사진=김연수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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