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블랙홀은 거대한 미로다"
슈퍼미로 가설, 블랙홀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
2025-04-11 09:43:40 2025-04-11 14:49:15
챗GPT가 그린 슈퍼미로의 이미지.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블랙홀의 존재는 아인슈타인, 칼 슈바르츠실트, 그리고 로저 펜로즈에 의해서 이론적으로 예측되었고,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안드레아 게스와 라인하르트 겐첼의 관측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2022년 5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은 우리 은하 중심의 초질량 블랙홀 '궁수자리(Sagittarius) A'의 이미지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2019년 M87에 이어 두 번째로 촬영된 블랙홀 이미지입니다. 천체물리학에서는 블랙홀의 존재를 강력한 증거로 확인했으며, 내부 구조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미국 물리학자 존 휠러(John A. Wheeler)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중력 붕괴 천체(gravitationally collapsed object)나 어두운 별(dark star) 같은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블랙홀이 어떤 상태고,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이 여전히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어둠’으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막들이 엉켜 진동하는 수퍼미로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 블랙홀 내부에는 슈퍼미로(supermaze)라고 불리는 뒤엉킨 막(膜)들이 존재하며, 이 구조가 다차원에서 정보를 보존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습니다. 파리대학 이론 물리학 연구소의 요시프 베나(Iosif Bena)와 디미트리오스 토알리카스(Dimitrios Toalikas), 취리히 대학 이론 물리학 연구소의 앤서니 후프(Anthony Houppe),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수학자 니콜라스 워너(Nicholas Warner) 등이 참여한 연구진은 블랙홀이 슈퍼미로로 이루어졌다는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슈퍼미로는 1995년 이론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Edward Witten)이 주장한 M-이론에서 비롯된 개념입니다. 이는 9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존재한다고 가정한 기존의 다섯 가지 초끈이론을 하나로 통합한 이론적 틀입니다. M-이론에서는 우리가 익숙한 4차원(3차원 공간+시간)뿐만 아니라, 총 11개의 차원이 존재한다고 가정합니다. M-이론의 핵심 요소는 브레인(brane)으로 이것은 막을 의미하는 멤브레인(membrane)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 브레인은 다차원적으로 진동하는 끈으로, 이들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작용합니다.
 
슈퍼미로는 2차원 공간과 시간을 가진 M2, 5차원 공간과 시간을 가진 M5 브레인이 블랙홀 내부에서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나타낸 지도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를 통해 블랙홀의 미시적 구조, 즉 양자 수준에서의 구성 방식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은하계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의 이미지. (사진=Event Horizon Telescope Collaboration)
 
블랙홀 정보 역설, 슈퍼미로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블랙홀 슈퍼미로 연구를 통해 블랙홀의 양자적 성질과 정보 저장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언젠가는 블랙홀이 증발하여 없어진다는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 및 정보 소실 문제(information loss paradox) 같은 미해결된 물리학적 난제를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동 연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니콜라스 워너는 “슈퍼미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로, 수많은 방과 공간, 벽의 교차점들이 있으며, 그 벽들에는 다양한 층이 존재한다. 여기서 벽은 브레인(brane)이며, 교차점은 M2와 M5가 만나는 지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슈퍼미로는 끈이론의 퍼즈볼(fuzzball) 개념과 유사하게, 블랙홀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하나의 특이점으로 수렴되는 구조가 아닌 다차원적으로 얽힌 구조일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현재로서는 슈퍼미로 가설이 확정적인 이론이라기보다는 흥미로운 가설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 중력과 블랙홀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1970년대에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통해 증발하면 남는 것은 단순한 열 복사(thermal radiation)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양자적 차원에서 원래의 정보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는 양자역학의 유니타리티(unitarity)와 모순되기 때문에 블랙홀 정보 역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유니타리티는 양자 세계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변화가 일어나도, 원래 있었던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양자역학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그러나 블랙홀이 다차원적인 브레인들이 얽혀있는 퍼즐볼 형태로 존재한다면 블랙홀 정보 역설이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간의 모순 해결 가능성
 
요약하자면 슈퍼미로 접근법은 끈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블랙홀의 내부 구조를 복잡하고 상호 연결된 복잡한 네트워크, 즉 ‘미로’로 표현합니다. 이 미로는 단순한 정적인 구조가 아니라, 블랙홀이 환경과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동적인 체계입니다. 미로의 복잡성은 블랙홀 내부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수많은 미시 상태(microstates)를 반영하며, 이는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간의 충돌을 해결할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제기된 블랙홀의 슈퍼미로 이론은 타당성을 관측으로 검증할 수 없는 수학적 계산에 의한 가설에 불과합니다. 블랙홀 내부를 직접 관찰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중력파 연구나 주변 방사선 분석을 통해 내부 구조에 대한 단서를 찾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슈퍼미로 이론을 뒷받침할 근거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NASA가 제공한 자료를 기초로 만든 블랙홀의 이미지. (사진=GettyImages)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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