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마라톤,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극한 운동이 신체적 한계 시험…신경계의 가소성과 적응 메커니즘에도 영향
2025-04-09 08:56:22 2025-04-09 14:45:04
신경세포의 축삭(보라색)을 미엘린(노란색)이 칼집처럼 감싸고 있는 모습. 슈반세포가 미엘린을 형성하고 미엘린이 파괴되면 에너지가 적게 드는 랑비에르 결절로의 도약전도가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픽=위키피디아)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마라톤은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극한의 지구력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신체뿐만 아니라 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페드로 라모스-카브레르(Pedro Ramos-Cabrer) 박사를 비롯한 스페인 바스크 연구기술연합(Basque Research & Technology Alliance, BRTA) 소속 과학자들은 마라톤 같은 장시간 지구력 운동이 신경계, 특히 뇌의 미엘린(myelin)에 미치는 영향을 미엘린 지질층(lipid layer) 사이에 포함된 수분을 MRI 스캐닝으로 측정하여 밝혔습니다.
 
미엘린은 마치 전선의 피복과도 같이 신경세포(뉴런)의 축삭(axon)을 감싸는 절연층으로, 신경 신호의 전도 속도를 높이고 대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번 연구는 마라톤과 같이 장시간 에너지를 소비하는 운동이 미엘린의 구조와 기능에 일시적·가역적 변화를 유발하며, 이러한 변화가 뇌의 에너지 대사, 그리고 뇌가 경험, 학습, 환경적 변화 등에 적응하면서 신경 연결을 변화시키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마라톤이 에너지 대사에 미치는 영향
 
마라톤이나 산악 마라톤은 신체 전반의 에너지 저장고를 동원하여 운동 중에 발생하는 높은 에너지 요구를 충족시킵니다. 일반적으로 마라톤 선수들은 탄수화물(글리코겐)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운동이 지속됨에 따라 근육과 간은 물론이고 심지어 뇌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서 글리코겐을 글루코스로 분해하여 사용합니다. 그리고 글리코겐이 고갈되면 지방을 대체 에너지원으로 활용합니다. 지방은 탄수화물보다 풍부한 에너지원이며, 장시간의 지구력 운동에 필수적입니다.
 
BRTA 연구진은 최근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한 연구에서 뇌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조달할 가능성이 제기했습니다. 즉, 미엘린을 구성하는 지질(lipid)이 뇌의 에너지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이는 신체가 장시간의 극한 운동 중 에너지 결핍 상태에 빠질 경우, 미엘린 지질이 신경 세포의 생존과 기능 유지에 사용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마라톤 후 뇌의 미엘린 가역적 감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마라톤을 완주한 뒤 뇌 백질(白質)의 미엘린 수분 분율(myelin water fraction, MWF) 값이 감소하는 것이 MRI 스캐닝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MWF 값은 미엘린 함량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정량적 지표로, 마라톤 이후 이러한 값이 감소하는 것은 미엘린 구조에 일시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의미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변화는 일시적이며, 약 두 달 후에는 원래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미엘린 감소와 회복 과정은 ‘대사적 미엘린 가소성(metabolic myelin plasticity)’이라는 개념과 연관될 수 있습니다. 즉, 장기간의 지구력 운동이 뇌의 미엘린을 에너지 저장소로 활용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이는 마라톤과 같은 극한 운동이 단순히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신경계의 가소성과 적응 메커니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엘린의 대사적 역할과 신경 보호 기능
 
미엘린은 단순히 뉴런의 신호 전달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 외에도 뇌 에너지 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신경교세포 중 하나인 희소돌기아교세포(oligodendrocytes)는 미엘린을 생성하고 유지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방산(fatty acid) 대사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희소돌기아교세포는 포도당(glucose)이 부족한 환경에서 미엘린 지질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극한의 운동 중 뇌의 에너지 수요가 증가할 때, 미엘린이 일시적으로 분해되어 뉴런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가설은 신경퇴행성 질환(neurodegenerative diseases)과도 관련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발성 경화증(MS)과 같은 질환에서는 미엘린이 손상되며, 이는 신경 기능 저하로 이어집니다. 만약 미엘린이 신경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이러한 질환에서 나타나는 미엘린 손상이 미엘린의 절연 손실(絶緣 損失)뿐만 아니라 뉴런의 에너지 공급 부족과도 관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엘린 대사 연구는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그러나 식욕 부진이나 기아같이 영양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나 유전적으로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에 취약한 개인에게는 마라톤 같은 운동이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운동에 따른 미엘린 변화의 장기적인 영향, 다양한 운동 형태가 미엘린 대사에 미치는 차이, 그리고 운동을 통한 신경 보호 효과 등에 대한 추가적인 탐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라톤이 단순한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 아니라, 뇌의 구조와 신경 가소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가 기대됩니다.
 
마라톤은 장시간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사진=뉴시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