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78일 만에 성사된 한·미 정상 간 통화는 '비용 청구서' 자체였습니다.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라고 칭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 발언이 현실화된 겁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은 '관세 폭탄'과 방위비 인상을 고리로 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민감국가 지정'이라는 삼중고를 떠안을 전망입니다.
지난해 10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 시가행진에서 주한 미군부대 장병들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위비 압박 '개시'…"100억달러 내야"
국무총리실 고위관계자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더라도 관세를 낮추는 것을 검토하는가'라는 질문에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관세와 방위비가 패키지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선·액화천연가스(LNG)·무역균형 등 경제통상 관계가 패키지로 엮여서 상호관세와 협상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통화에서 관세와 방위비를 연계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영향입니다. 그는 "우리가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 보호에 대한 지불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공개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사 보호'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한국)은 내 첫 임기 때 수십억달러의 군사적 비용 지불을 시작했지만, '졸린 바이든'(바이든 비하 별명)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계약을 종료했다"며 "그건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관세를 명분으로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 대한 압박도 본격화된 건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대선 운동 기간, 한국을 머니머신으로 칭하며 한국이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약 14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전임 정부와 이미 협상을 마무리 지은 12차 SMA의 9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주한미군, '대중국 견제용' 되나…"추가 비용 청구도"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중순 국방부 내에 배포한 '임시 국방 전략 지침'에는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가 최우선 과제로 명시됐습니다. 문제는 해당 지침에 '여타 지역에서의 위협을 감수'할 것이라고 적었다는 겁니다. 이는 동맹국들이 러시아·북한·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라는 건데요. 미국의 동맹국 안보 우산을 약화하고 각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인상하라는 신호입니다.
그 첫 대상은 9배가 넘는 금액을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입니다. 상호관세 부과에 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조차 백지화된 상황에서 미국에서는 '행정 명령'에 불과한 12차 SMA 재협상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방위비뿐만 아닙니다. 8일(현지시간)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가 미국 상원 인준을 통과했습니다. 그는 미국 행정부에서 동맹 전략 등 국방정책 수립의 핵심 역할을 맡을 예정입니다. 그런데 콜비 차관은 대중국 강경파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을 주장해 왔습니다.
한국이 자체 방위 능력을 강화해서 북한에 대한 1차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대로라면 노무현정부 시기인 지난 2006년 한·미가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이 주한미군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날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이미 항목이 제한적인 방위비 문제를 재협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전략자산 전개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비용 청구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부인하기는 했지만 관세 문제가 방위비 협상에 연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역이나 관세와 관련 없는 사안도 그들이 거론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각국이 관세와 별개의 사안들도 거론하며 대미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건데요. 한국의 경우 방위비를 관세 협상과 묶어서 처리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한국은 SMA에 따른 공식 분담금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주둔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러한 간접적 기여 항목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토대로 총체적 기여 개념 하에 협상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방위비 협상에서의 바람직한 대응책"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 지정된 민감국가도 변수입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오는 15일 대한민국에 대한 민감국가 지정이 발효됩니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오는 15일 전 해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이 실질적인 연구·개발(R&D) 협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인데요.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와 방위비 협상에 있어 민감국가 지정 해제 문제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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