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에 사용된 미소 된장. (사진=iScienc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이루어진 된장 발효 실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번 연구는 MIT 미디어랩을 비롯한 국제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연구 결과는 4월2일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되었습니다. 연구진은 30일 동안 우주에서 된장을 발효시키고, 지구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발효된 대조군과 비교하여 우주 환경이 발효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우주에서도 안정적으로 된장이 발효될 수 있으며, 우주 환경이 발효 과정에 독특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우주 떼루아(space terroir)'라고 명명했습니다. 떼루아는 프랑스어로 농작물, 특히 포도를 재배하는 ‘토양’이나 ‘풍토’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바람과 햇빛, 지리나 기후, 재배법, 숙성 노하우까지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환경이나 토양, 미생물을 총칭하는 말로 포도의 재배 환경이나 방식에 따라 와인의 독특한 풍미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상황을 ‘떼루아’라고 표현합니다.
우주에서도 발효가 가능할까?
우주 공간에서의 식품 발효 가능성은 그동안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우주 환경에서 미생물의 발효 과정은 지구와는 다른 생리학적 변화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미세 중력과 우주 방사선은 미생물의 성장 속도, 대사 경로, 효소 활성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미래의 우주 식량 생산 및 의약품 개발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우주 비행사들이 섭취해온 기존의 우주 식량은 대부분 냉동 건조 방식으로 보존되었고,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은 큰 도전 과제였습니다. 하지만 발효는 음식의 보존 기간을 늘리고 풍미를 향상시키며,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우주 비행사들의 식단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실험에서 연구진은 일본 전통 발효 식품인 미소된장을 선택했습니다. 된장은 콩과 쌀, 누룩으로 만들어지며, 발효 과정에서 독특한 감칠맛과 영양소가 생성됩니다. 프리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가 다 함유된 식품이기도 합니다. 이 연구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특정 균주를 이용하여 발효 실험을 진행했는데, 미생물 성장 속도, 대사산물 농도, 유전자 발현 변화 등의 변수를 분석했습니다. 연구팀은 지상의 동일 환경에서 같은 균주를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발효하여 비교 분석했습니다.
우주 떼루아: 발효의 새로운 차원
실험 결과, 우주에서 발효된 된장은 지구에서 발효된 된장과 몇 가지 차이점을 보였습니다. 우주 환경의 미세 중력과 높은 방사선 수준이 발효 과정에 영향을 주었으며, 미생물 군집과 대사 경로에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연구진이 ‘우주 떼루아’라고 표현한 우주 환경이 식품의 맛과 향을 독특하게 형성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떼루아는 특정 방식으로 식량 생산을 형성하여 ‘장소의 맛’을 만들어내는 자연적·문화적 특징(예: 위치, 토양, 지형, 기후, 미생물, 건축 환경, 전통 관습, 지식)의 체계다. 방사선과 미세 중력 같은 실험을 형성하는 몇 가지 요소는 우주 자체의 자연적인 특징인 반면, 온도 상승과 물리적 교란 같은 다른 요소는 현재 우리가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복잡한 사회-기술 시스템의 일부인 문화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우주 떼루아’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장점을 제공한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색도 분석과 감각 테스트 결과, 우주 된장은 지구 된장보다 색이 조금 더 짙었으며, 감칠맛과 풍미가 다소 달랐습니다. 또한, 미생물 DNA 분석을 통해 일부 미생물 군집이 우주 환경에서 더 활발하게 증식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장기 우주 탐사에서 발효 기술을 활용할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발견입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우주 환경에서 미생물 발효 과정이 기존 지구 환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미세 중력과 우주 방사선이 미생물의 성장 및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향후 우주 식량 생산 및 제약 산업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 식량 혁신의 길을 열어
이번 연구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 미래 우주 탐사에서 발효식품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장기 우주 임무에서 신선한 식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며, 발효 기술을 활용하면 영양가 높은 식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또한, 우주비행사들의 건강과 심리적 만족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추정입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이 우주에서의 발효 연구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김치, 치즈, 빵 등 다양한 발효식품을 우주 환경에서 실험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도식으로 나타낸 실험 설계. (사진=iScience)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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