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스페인)=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Hi, I'm Alice".
전시장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로봇이 동그란 눈으로 마주봅니다. 이어 "문제를 맞히면 선물을 줄게, 나를 움직이는 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익시"라고 대답하자 선물로 물병을 줍니다. 제한된 동작이지만, 실수 없이 끝냈습니다. 팔 움직임도 퍽 자연스럽습니다. 한 관람객을 한참 바라보다 "대화하는 거 같다"며 중얼거리며 자리를 뜨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3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래스(MWC)2025에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선물도 준 이 로봇은
LG유플러스(032640)의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앨리스입니다. 스타트업 에이로봇과 협업해 자사의 인공지능(AI) 익시를 심었습니다. '융합하라(Converge)·연결하라(Connect)·창조하라(Create)'를 주제로 열린 올해 MWC에서 AI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융합과 연결,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면, 휴머노이드는 AI를 외적인 실체로 구현해내며 전시장 곳곳에 포진했습니다. 마치 인간의 동반자처럼요.
에이로봇에 LG유플러스 익시가 들어간 휴머노이드 '앨리스'. (사진=뉴스토마토)
MWC 개막과 함께 이번에는 3홀 주변에서 또 다른 2족 보행 휴머노이드가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닙니다. 마치 MWC 부스 곳곳을 살펴보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했는데요. 신장은 초등학생 2~3학년 정도로, '달그락 달그락, 닥닥' 소리를 내며 걸어다닙니다. 곧 넘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였던 다리는, 우려와 달리 쉼 없이 움직여 3홀이 끝나는 한쪽에 무사히 멈췄습니다. 잘 걷는 로봇,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의 부스 관람이 마무리된 순간입니다.
중국 유니트리의 2족 보행 휴머노이드. (사진=뉴스토마토)
두달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다음은 피지컬 AI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상의 공간을 넘어 모빌리티와 휴머노이드 등 물리적 실체를 직접 작동하는 AI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의미인데요.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반영하듯 MWC에서는 일상생활에 적응 중인 다양한 휴머노이드가 공개됐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 통신사인 e&도 휴머노이드 '아미라'를 입구 초입에 전시했습니다. 사람처럼 보이도록 가발을 쓴 데다 검은색 원피스와 빨간색 카디건까지 입고 있어 시선을 압도했습니다. 아미라는 근처에 사람이 다가오면 시선을 맞추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합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냐"는 질문에는 "오늘은 영어로만 대답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가볍게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향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대면 손을 올리고 포즈도 취했습니다.
e&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미라. (사진=뉴스토마토)
젠슨 황의 예언이 MWC에서 고스란히 실현된 셈인데요.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술의 도입과 시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이라며 "앞으로의 두 달이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아너는 바둑두는 로봇 센스로봇X을 선보였다. (사진=뉴스토마토)
휴머노이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로봇이 MWC 전시장 곳곳에 배치됐습니다. 중국 아너는 바둑 두는 로봇, '센스로봇X'를 전시했습니다. 단순히 로봇 팔을 사용해 바둑 돌을 돌통에서 가져와 바둑알을 판에 놓는 것뿐 아니라 스크린을 통해 눈을 움직이며 판세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18급부터 9단까지 대국 레벨이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대국을 마친 후에는 스스로 바둑돌을 통에 담아 정리까지 마무리했습니다.
로봇의 성장세는 압도적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23년 공개한 보고서에서 10~15년 이내에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6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고,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트도 연평균 성장률 45.5%를 기록하며 2023년 24억달러 규모였던 시장이 2032년 660억달러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다만 예상 성장률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휴머노이드가 현재의 퍼포먼스에서 벗어나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에이로봇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부교수는 "중국 기업들이 선보이고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신장이 130㎝에 그치는데, 실제 제조업에서 사용되려면 160㎝는 돼야 한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에 중국이 퍼포먼스를 강조하며 바짝 쫓고 있지만 한국의 로봇 사업에도 기회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앨리스를 로봇과 AI의 첫 결합이라고 본다면, 이후 AI 소프트웨어를 확장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바르셀로나(스페인)=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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