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기대 이하의 한국경제 성적표에도 민망한 경제 낙관론을 펼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각별한 경각심', '당분간 어려움 전망', '모든 가능성에 대비' 등 경계감의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경제 전반의 부진 등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올해 남은 4분기도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데다, 돌려막기식 재정 등 정부 책임론을 향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상목(사진 왼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종합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낙관론 최상목→경계감 뒷북
주요 20개국(G20) 미국 워싱턴 D.C. 현장에서 낙관론을 펼친 최상목 부총리는 지난 27일 귀국 후 28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연 자리에서 "정부는 각별한 경각심을 가지고 범부처 비상대응체계를 통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펀더멘탈과 괴리된 금융·외환시장의 과도한 변동성에 대해서는 관계기관 공조 하에 상황별 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에 따라 신속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적신호가 켜진 3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적과 관련해서는 "경기 관련 불확실성에 각별히 유의하면서 대내외 여건과 부문별 동향을 면밀히 점검해 적극 대응하겠다"며 "건설투자는 수주감소가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당분간 어려움이 전망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취약부문 어려움에 대한 정책적 노력 강화와 수출을 향한 대외 불확실성 상존 등 철저한 대비도 당부했습니다. '올해 성장률, 잠재성장률보다 높아 우려하지 않아도 돼' 등 낙관론을 펼쳤던 때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입니다.
이날 정부의 강화책은 송전 인프라 구축·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추가 지원, 석유화학의 고부가가치 기술 개발과 이차전지 특화단지 인프라 지원, 공공 공사비 현실 방안 연내 확정, 취약계층 추가적인 맞춤형 지원 방안 등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석 달도 남지 않은 4분기 정책적 효과가 고개를 들지 미지수입니다.
서울 최저기온이 7.1도까지 떨어지면서 올 가을 최저 기온을 기록한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옷차림을 두껍게 한 직장인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생각"
무엇보다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는 지적입니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부자감세로 2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를 내놓으니 확장 재정정책을 쓸 여력이 없는 것. 세입추경 등을 통해 민생경제를 살려야 하지만 그럴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국민들께서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사실상 무정부 상태라고 생각하고 계신다. 윤 정부 경제팀에서 힘들어 절망에 놓인 국민들을 위해 확장 재정정책으로 조속히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기재부 종합국정감사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의 필요성이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최상목 부총리는 추경 편성 대응보단 기금·불용 등 가용재원을 활용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올해 29조7000억원 규모의 세수 결손을 막기 위해서는 외국환평형기금·주택도시기금 등 최대 16조원의 기금 여윳돈을 투입하고 지방교부세 중 6조5000억원과 통상적 불용재원도 동원합니다.
기획재정부는 28일 외국환평형 등 기금·특별회계 가용재원 활용, 지방교부세·교육교부금 감액, 불용 예산 등을 동원해 세수 결손을 메우겠다고 밝혔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추경 선 긋고…"2년 연속 돌려막기"
경제 실기로 인한 세수 결손을 2년 연속 '기금 돌려막기'와 지방교부금 감액 등 '지자체 책임'으로 돌린 만큼, 거센 비판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더욱이 외평기금 자산 감소는 외환 정책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외평기금이 보유한 유동자산 규모는 2022년 111조원에서 2024년 69조원으로 2년 만에 41조6000억원(-37%)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기재부 발표대로 약 5조원가량을 추가로 공자기금(공공자금관리기금)에 조기상환 한다면 외평기금 유동자산 규모는 24년 말 69조원에서 약 64조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외평기금에 원화자산을 공자기금에 조기 상환한다 하더라도 이는 내부거래에 불과해 재정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재한적이다. 국채발행 시점을 미래에 미루는 효과에 불과하며 일반회계가 공자기금에 돈을 빌리는 적자국채 발행량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공자기금과 외평기금 자금의 입출입은 외환정책 차원에서 수행돼야한다. 시장 참여자가 외환정책과 상관없이 세수결손을 메우고자 외평기금의 자산이 감소한다는 시그널을 준다면 우리나라 외환정책의 신뢰성을 훼손하게 된다"고 우려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 민주당·혁신당 일동은 "정부의 대응방안의 골자는 허울 좋은 '국채발행은 없다'는 논리로 국가와 지방의 재정을 악화시키는 양두구육식 재정 돌려막기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발표 시점을 설정한 것은 산적한 감사 이슈로 재정 돌려막기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려는 의도로"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국채발행을 하지 않을테니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지방채를 발행하라는 빚 떠넘기기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외평기금을 세수 결손에 활용하는 것은 대외신인도에 부담이 아니고 국채발행만 대외신인도에 부정적영향을 끼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야당 의원들은 "재정 파탄을 초래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실패를 규명하고 이 사태의 주 원인인 부자감세를 철회하기 위한 국회 차원의 '재정파탄 청문회'를 즉각 소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은 종합감사에서 정부가 국회를 패싱하고 세수 재추계 재정 대응방안을 발표했다고 지적하는 등 기재위 국정감사가 약 50분간 중단된 바 있습니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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